독자편지
진보정치 연합체에 대한 입장에서 군더더기로 보이는 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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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기 전에 “박근혜 패퇴와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한 진보정치 연합체가 필요하다”를 읽으시오.
노동자연대다함께가 발표한 성명 ‘박근혜 패퇴와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한 진보정치 연합체가 필요하다’의 내용은 하등 문제가 없다. 다만 성명이라는 점에서 불필요한 사족이 거슬리고, 오해 소지를 낳는 글의 균형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우선 성명은 굵직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근거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겠으나 너무 세부적 설명, 특히 오해의 소지라는 반대 급부를 의식해 군더더기로 보이는 설명은 오해의 소지가 커 보인다.
사족
참여당계 지도부를 배제하겠다고 하면서(물론 참여당계 지도부와 그런 식의 정치라고 배제의 대상으로 명시해야 하지만) 평당원까지 낙인이나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필요 없는 설명이라는 것이다. 핵심은 누군가가 참여당계 출신이었다고 해도 노동자연대다함께가 제시하는 진보정치 연합체에 견인이 가능한 정도가 된다면 그 순간 더 이상 참여당계 아니다.
현실적으로 참여당계 심대한 자체 잘못이나 모순이 있어서 기층이 흔들리는 상황이 아닌 데다 (물론 이번 총선 경선 부정 당시 이들도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것은 아니나 현재 문제의 핵심은 구당권파 문제로 옮겨갔다는 측면을 보아) 올해를 놓고 본다면 더더욱 그런 효과는 무망한 측면이 있다.
맥락상 성명을 통해 진보정치 연합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현실이지, 현재 그것이 있거나 그에 준하는 흐름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을 보아도 이런 설명이나 사고는 앞서 나간 것이다. 진보정치 연대체의 핵심 세력의 조건 - 유시민처럼 진보가 아니고 ‘민주당 왼쪽 날개도 대안일 수 있다’는 세력들을 빼고 급진좌파부터 민주노총,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진보적 NGO까지 광범한 진보진영과 노동운동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 - 이 명확한 정치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것도 벅찬 실정이다.
여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 주체였던 사람들이 대대적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소름끼치는 얼굴을 본 참여당계 출신자들의 입장에서 좌파들에 대한 패권성과 폭력성의 오해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번 경선 문제를 대대적으로 제기하는 모양새를 낸 것도 참여당계 지도부이니 기층이 지도부와 이반하기도 어렵다.
진보정치가 하향 곡선을 그리는 현 추세에서 이런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지도 의문이다. 만일 현 진보정치의 파국이 참여당계를 비롯한 당내 우파들의 명백한 잘못으로 민주노총이 지지를 철회하고, 당이 붕괴하는 반대의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진보정치 운동을 제안하면서 참여당계 출신 평당원들을 끌어당길 수는 있을 것이고 또 이런 주장이 필요한 내용일 수는 있을 것이다.
독자 후보
진보정치 연합체가 당장 서는 것도 시급한 상황에서 노동자연대다함께 성명은 독자 후보가 서고(여기까지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후보가 민주당 등 범 야권에 양보할 가능성도 ‘앞서서’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런 가능성은 농후하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진보정치가 정당적 형태를 형성한다고 해도 통합진보당 사태라는 너무나도 깊은 타격에서 겨우 회복한 상황일 것이고, 아쉬운 대로 민주당 지지 압력이 높아진 여론을 만회하기란 어려울 확률이 높다.
그러나 미리 그런 후퇴한 상황을 해설하는 것은 당장의 중대 과제인 진보정치 연합체 형성을 위한 막대 구부리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직 그런 새로운 정당 건설이 본격화하지도 않았는데 통합진보당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노동자연대다함께의 성명은 앞서나간 것을 떠나서 주장에 대한 진정성을 오해하게 만든다.
즉, 결과적으로 그럴 수도 있다는 설명이 길어져 우리가 제시하는 연합체를 만들어야 할 이유를 희석시켜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과제를 절실하게 느끼게 하지 않고 느슨하게 만든다. 올해에 당장 필요하다는 절실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노동자연대다함께의 성명은 독자 출마 포기라는 양보를 염두에 두게 함으로써 힘을 뺀다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정치 연합체의 대선에 대한 중심 입장은 ‘독자 출마로 계급적 요구를 반영하는 대안을 대선이라는 공간을 이용해 선전한다’일 것이다. 우리는 새 연합체에 참여해 결과적으로 독자 후보가 무산되거나 낙마하는 결과가 예상된다고 해서 후퇴한 입장을 결정하는 상황까지도 찬성표를 던지거나 지지를 해서는 안된다. 만일 그때 가서 사회적 투쟁의 수준이 고양되는 상황(예컨대 촛불이나 더 좋기로는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파업)이 펼쳐진다면 더더욱 독자적 출마의 정당성을 고집해야 한다. 만일 결과적으로 결정이 독자 출마 무산이 되었을 때 비판적 지지와 같은 전환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처음에 독자 출마를 고집하는 것을 보고 오른쪽으로부터 초좌파라는 비난을, 독자 후보가 무산된 상황에서 범 야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하는 것을 보고 왼쪽으로부터 개량이라는 비난을, 다시 양쪽으로부터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는 식의 기회주의나 대중 추수라는 식의 욕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술이 어째서 필요한지 우리는 욕을 먹어가면서 설명해야 한다. 노동계급 정치가 위기인 상황에서 그것을 진정성 있게 방어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여러 정파들로부터) 더 많은 욕과 오해,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사회주의자들은 각오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진정성을 알아주고 계급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동시에 가지고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입장은 분명해야 하고 핵심 원칙을 중심으로 필요한 과제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세부적인 차원의 해설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타이밍에 적절한 지면을 선택해서 해도 좋을 내용을 굳이 모두 몰아넣는 것은 당면 핵심 주장을 희석시키므로 좋은 방법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