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상근 간부층은 왜 소심하게 타협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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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이들이 현대차 노조에서 친사측 우파였던 전임 이경훈 지도부를 비판하며 등장한 문용문 집행부의 일방적인 노사 합의를 보고 실망했을 것이다.
올해 정부와 사장들이 전국적 규모에서 만도, 에스제이엠 등에서 노조 와해 공작을 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시켜 왔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 지도부는 부문적 시야에 갇혀 연대를 강력하게 건설하지 않았고, 민주노총 파업 기간에 단독으로 타결을 선언해 버렸다.
왜 노동조합 지도부만 되면, 기대에 못 미치는 타협을 하려 할까. 이를 이해하려면 ‘노동조합 관료주의’라는 분석 틀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은 기업주와 정부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해 노동조건 등을 지키려고 만든 무기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을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지키려는 기구라서, 착취 그 자체가 아니라 착취의 조건을 놓고 투쟁하고 협상을 하게 된다.
이런 노동조합의 한계 때문에 아무리 전투적인 노조 투사라도 노조 상근 간부가 되면 노조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중재와 화해를 미덕으로 여기는 경향에 물들게 된다.
그래서 사측과의 교섭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면, 조합원에 대한 통제가 주요한 관건이 된다. 투쟁은 협상을 위태롭게 만들고 조직을 파괴할 수도 있는 골치아픈 일로 여기게 된다.
노조 상근 간부들의 소심함은 투쟁의 판돈이 커지면 커질수록, 계급 간 충돌이 첨예해지면 첨예해질수록 더 두드러진다. 중재자로서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노조 지도자들의 보수적 습성은 그가 수행하는 구실과 사회적 위치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사회적 위치
이처럼 협상을 우선하는 태도가 현대차 노조 지도부로 하여금 불필요한 타협을 반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과 주간연속2교대제 두 쟁점 모두에서 현대차 사측이 매우 완강한 태도로 나왔기 때문에 노조 지도부는 사측에 실질적 타격을 주는 투쟁을 조직해 첨예한 충돌을 감수하든지, 어떻게든 타협해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압력에 처했던 것이다.
노동조합의 한계에서 비롯하는 이런 노동조합 관료주의 특성은 상층 지도자들의 시야를 자신이 속한 작업장의 경제적 문제들로 가두게 하는 데도 일조한다.
물론 노조 지도자들은 기층의 투쟁 압력에도 영향을 받는다. 선출되는 자신의 위치 때문이다. 그러나 중재자라는 본연의 위치를 위협받지 않을 수준까지만 그렇게 하려고 한다.
따라서 더 전투적인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만으로 이런 반복되는 낭패감을 만회하려고 애쓰는 것은 진정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올해 문용문 집행부가 바로 우파적인 이경훈 집행부를 대체한 민주파 아니었던가. 이경훈 집행부도 전투적 현장파인 윤해모 집행부가 투쟁을 회피하고 불필요한 타협을 하다가 사퇴한 결과로 선출됐던 것이다.
노동조합 운동 안에서 진정한 구분은 현장조합원과 노조 지도부 사이에 존재한다.
따라서 노조 지도부가 기층을 올바르게 대변할 때 지지하며 함께 싸우고,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으면 현장 조합원의 독자 행동을 건설하는 것이 올바른 지침이다.
이렇게 되도록 하려면 기층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신감과 전투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경제 위기 시대에 올바른 정치적 관점으로 현장조합원들 사이에서 각종 지배 이데올로기와 부문주의에 맞서 싸우며 조직하고 선동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노력과 네트워크가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