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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수핏 인터뷰:
“한국인들이 우리 싸움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수핏은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20대 초반에 한국에 왔다.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어요. 캄보디아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사는 것은 예상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제가 처음 일한 곳은 천안에 있는 전기포트 만드는 공장이었어요.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하는데, 때때로 새벽 3시까지 일해야 했죠. 하루에도 몇 차례 일하다가 감전되고, 심지어 바로 옆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어요. 기숙사 한 방을 다섯 명이 썼는데, 밤에 돌아와도 다른 사람이 자고 있어서 불을 켤 수조차 없었어요. 기숙사가 더러워지고 화재 위험이 있다며 밥도 못 해 먹게 했어요.”

근무 조건도 열악했지만,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남긴 것은 비인간적인 대우였다.

“한번은 같이 일하는 동료가 갑자기 피를 토해 병원을 가야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한국어를 몰라서 의사에게 뭐라고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사장이나 관리자에게 병원에 같이 가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들은 택시 불러서 알아서 가라고 했어요. 더는 거기서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핏은 직장을 옮기려고 했지만, 사장이 허락하지 않았다. 고용허가제에 따라, 직장을 옮기려면 수핏이 사장의 법 위반 사실을 직접 증명하거나, 사장이 사업장 변동 신청서에 스스로 서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저는 노동부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노동부 직원은 제 얘기는 듣지도 않고 사장에게 전화하더니 사장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직장을 옮길 수 없다고 했어요. 그 뒤로 저는 한 달 동안 매일 노동부로 가서 그 직원 앞에 앉아서 기다렸어요. 그 직원은 저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피했어요. 그런데 머물 곳도 마땅치 않았고, 저를 도와줄 곳도 없는 한국에서 제가 찾아갈 곳은 노동부밖에 없었어요. 저는 하루하루 불법이 될까 봐 두려웠어요. 결국 한 달 만에 사장의 사인을 받아냈죠. 정말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어요.”

수핏은 그러다가 서울에서 이주노동자 집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베트남 친구에게 8월 19일 집회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무조건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후 웹사이트에서 집회 정보를 찾았고, 제가 아는 친구들에게 함께 가자고 연락했어요. 한국어를 몰라서 표현할 수 없던 문제들을 집회를 통해 잘 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무려 5백여 명이 참가한 8월 19일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사진 김현옥

집회에 참가하면서 수핏에게 변화가 생겼다.

“이런 집회에 참가한 것도 처음이고, 캄보디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도 처음 봤어요. 다들 저처럼 고통스러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집회와 행진이 끝났지만 쉽게 돌아갈 수 없었어요. 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더 많은 정보를 원했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일정도 알고 싶었고, 사람들의 얘기도 더 듣고 싶고, 또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주노조처럼 우리 문제에 관심을 가진 단체를 알게 된 것도 매우 기뻤습니다. 우리가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죠. 제가 직접 참가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어요.”

“우리를 사람 취급 않는 정부”

집회가 끝나고도 노동자 1백여 명은 돌아가지 않았고, 한 번 더 집회를 하자고 했다. 이주공동행동은 이들의 열의를 지지하고, ‘고용노동부 지침 철회를 위한 전국비대위’에 ‘전국 이주노동자 집회’를 제안했다. 결국 9월 23일에 서울에서 집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함께 회의하고 역할을 분담하고 집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이후 캄보디아, 베트남, 버마, 네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함께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저는 회의에 참가하면서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시위를 어떻게 조직하는지도 배우고, 조직화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어요. 정부는 힘 있는 사장들 편이고 우리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도 무관심하고, 노동자를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혼자일 때는 외롭고 두려웠지만, 수핏은 뜻을 함께하는 동료와 단체를 만나자 힘이 났다.

“지난주에 혼자 인근 지하철에서 한국인들에게 사업장 변경 지침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았어요. 친구들이 그러다가 잡혀가고 추방될 수 있으니 하지 말라며 걱정합니다. 사실 저도 두려웠어요. 그러나 저는 참고 기다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싸우고 저항하지 않으면 노동부 지침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이주노조 등과 함께 집단적으로 요구하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제 뒤를 이어 이주하는 노동자들이 저처럼 부당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합니다.”

“우린 한국에서 필요한 일을 하려고 여기에 왔어요. 이건 한국 노동자들이 일하고 돈 벌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이게 욕심은 아니잖아요?”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늘 참고 견디고, 그러다가 힘들어서 울어요. 우리는 건강을 해치고 노동조건도 너무나 열악한 곳에서 일하다가, 몸 다 망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사업장에서 문제가 많아도 계약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해요. 그나마도 정부가 계약 기간을 3년으로 늘려 버렸고, 이제는 아예 사업장 이동조차 못 하게 해 버렸어요. 도대체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국인들이 알아 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긴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 줬으면 해요. 한국인들이 함께 서명과 시위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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