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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산 유출 사고:
뼈까지 녹이는 독극물이 방치되는 이유

두 청년이 용광로 쇳물에 목숨을 잃은지 한 달도 채 안 돼 이번에는 무려 다섯 명이 맹독성 물질에 온몸에 화상을 입고 숨졌다. 이들 중 두 명은 아직 서른 살도 안 된 청년들이었다. 사고를 낸 휴브글로벌은 LG디스플레이 공장 등에 불산을 납품해 온 회사로 알려졌다.

불산은 LCD나 반도체의 표면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사용하는 물질인데 인체에는 치명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발간하는 직업 안전 교육 자료에는 피부의 2퍼센트(손바닥 크기)만 이 물질에 노출되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가 실려 있을 정도다. 미국 정부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불산 농도가 30ppm에 이르면 즉각 대피하라고 경고한다.

살은 물론 뼈까지 녹아내리며 화학무기의 성분으로도 쓰이는 치명적 독극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방호복도 없이 이 물질을 다루다 죽은 것이다.

충격적인 항공사진이 보여 주듯이 사고가 난 지 1주일 만에 이 공장 일대는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주변으로 퍼져나간 불산 가스 때문에 거의 모든 식물이 타들어갔고 가축과 사람들에게서도 급성기 증상이 나타났다. 아무 대책없이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들도 피부에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다. 며칠 만에 사람 수백 명과 가축 수백 마리가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

화학 무기

당국의 사고 대응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술했다. 안전관리대책은 전무했고, 이런 물질이 옆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주민들은 제대로 대피도 못 했다. 소방서에는 중화제(석회)도 준비돼 있지 않아서 불산을 씻어낸 물이 낙동강으로 대책없이 흘러갔다.

심지어 정부는 휴브글로벌처럼 위험 물질을 다루는 수천 개의 기업들이 어디에서 무슨 물질을 다루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OECD가 2000년에 권고한 유독물질 등록제도는 기업들의 반발에 밀려 2010년에야 형식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보여 주듯이 실제로는 있으나마나한 상태다.

안전 대책 강화가 기업 이윤을 갉아먹기 때문일 것이다. 산재 예방을 위해 투자됐어야 할 돈은 고스란히 기업들의 이윤으로 남았다.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이런 물질의 사용 자체를 강력히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할 수도 있다. 이미 불산을 대체할 수 있는 안전한 물질들이 개발돼 있다. 그러나 여기에 드는 비용이 이윤을 낮추는 게 문제다.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죽고, 용광로 전복 사고로 청년들이 목숨을 잃고, 또 다른 청년들이 맹독성 물질을 뒤집어 쓰고 죽어도 삼성, GS, LG는 ‘성장’을 늦출 생각이 전혀 없다.

자본가들은 이번 사고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불산을 생산하는 국내 경쟁업체인 후성의 주가는 10월 2일 하루에만 5.34퍼센트나 올랐다.

올해 2월 여수광양항만공사는 영국계 석유화학기업인 멕시켐과 광양에 대형 불산 생산 공장을 짓기로 협약을 맺었다. 이들은 정부의 감시가 아니라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에서는 안전 규제를 강화하자거나 재해 예방 예산을 늘리자는 얘기도 없다. 이 자들은 하루에도 두 번이나 고장이 발생하는 핵발전소라는 시한폭탄도 없앨 생각이 없다.

이 체제의 정신나간 우선 순위는 완전히 거꾸로 세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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