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가 기획한 포럼 “2012년 대선과 경제민주화 ― 재벌개혁 논쟁”에 참관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재벌 개혁의 불필요함을 역설하던 김정호연세대 교수의 정세 분석에 공감이 가는 구절이 있어 소개해 본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줄을 잘 대면 살아남을 수 있다. 공생 관계일 뿐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이윤 추구하는 것은 똑같다. 대기업이 하청중소기업을 쥐어짜고, 노동자 임금을 줄이는 이유는 상품 가격이 싸야 시장에서 먹히기 때문이고, 결국 기업이란 건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재벌 개혁? 아무리 해봤자 이 사회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다.”
물론 김정호 교수는 자본주의의 구조를 현실적으로 묘사하긴 했으나 지배계급 입장에서 그 현실을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김진방 인하대 교수의 말대로 재벌의 무소불위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맞물려 노동의 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지만, 재벌 소유구조를 개혁해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정책안은 자본주의의 모순 심화로 자본의 집적성이 고도화되는 현시점에서 노동계급에게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재벌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인 중소기업을 성장시켜 낙수 효과를 보겠다는(가령 일자리 창출력을 키워 보겠다는) 논리가 과연 순탄히 진행될 수 있을까?
경제민주화를 진정 순탄하게 진행시킬 수 있는 힘은 재벌 개혁에서도, 일부 정치인의 도덕성에서도 기인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본가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힘은 노동계급의 조직 운동뿐이라는 점, 따라서 누군가 경제민주화를 부르짖는다면 중소기업 육성을 앞세우기보다는 노동운동의 급진성을 주장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