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 여성이 선택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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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전세계에서 약 5천만 명의 여성들이 낙태를 한다. 이중 절반은 불법 낙태다. 매년 2500만의 여성들이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무허가 시술소를 찾거나 아무런 의료적 도움 없이 스스로 낙태를 한다. 낙태는 종종 마취제도 없이 비위생적으로 이루어지며, 그렇기 때문에 상해, 질병, 죽음의 위험도 훨씬 크다.
세계보건기구는 오늘날 안전하지 못한 불법 낙태로 매년 최고 20만 명의 여성들이 사망한다고 추정한다. 중남미에서 낙태는 출산 연령 여성의 두번째 사망 요인이다.
여성들은 처벌이 두려워 의료적 조언 구하기를 망설이며, 원하지 않는 임신을 끝내기 위해 화학약품, 뜨개바늘, 옷걸이, 날카롭고 소독이 안 된 물건 들을 이용해 낙태하려다 상해를 입곤 한다.
우리 나라 여성들은 어떨까? 우리 나라에서 한해 동안 이루어지는 낙태는 공식적으로 150만 건
그런데 국내 산부인과 병
뒤집어 말하면,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닌 낙태는 모두 불법이며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버젓이 이루어지지만 사실상 음성적인, 이런 현실이 여성들에게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비록 오늘날 우리 나라의 많은 여성들이 낙태로 인해 피를 흘리며 죽거나 무허가 시술소에서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안전한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여전히 낙태하는 여성들은 죄인 취급당하며, 의료혜택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생명을 스스로 통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정신적 육체적 대가를 치르는 것은 여성 개인이며, 따라서 그들이 낙태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여성은 출산을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성
반낙태주의자들의 논리
반낙태주의자들은 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과 미국에서 반낙태주의자들은 대체로 핵무기와 사형제도를 지지한다. 1984년 미국의 반낙태주의자들이 주도한 폭탄세례 캠페인 당시 낙태 시술병원들은 소이탄 공격을 받았으며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 영국에서도 반낙태 광신자들이 여성들이 수술대 위에 있는데도 수술용기를 부수고 의료진을 공격했다.
생명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부류는 종종 태아의 생존능력에 대해 부정직하게 주장한다. 때로는 태아의 발 등을 보여주며 정서에 호소하려 한다. 그러나 폐가 호흡이 가능할 만큼 발달할 때까지는 어떤 태아도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없다. 24∼25주 된 태아의 80%는 사망하며, 27주 된 태아도 62%가 사망한다.
또, 반낙태주의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필요시 낙태를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후기 낙태의 비율은 매우 낮다.
여성이 부주의해서 생기는 문제 아니냐며 여성을 탓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피임의 성공률이 그만큼 낮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특히 어린 여성들은 적절한 성교육이나 피임법을 배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낙태를 여성의 죄로 여기려는 온갖 우익적 공격에 맞서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방어해야 한다. 다른 한편, 낙태를 남성의 잘못으로
요즘 많이 읽히는 책인 《섹슈얼리티 강의》
노동계급이 자신감에 차 있을 때 노조가 여성의 요구를 내걸고 함께 싸운 예는 많다. 1976년 영국의 낙태법과 이 법을 방어하기 위해 남녀 노동자들이 연대해 투쟁했다.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
20세기 후반기 동안 여성의 처지는 놀랍게 변했다. 여성의 3분의 2 가량이 취업하고, 직장을 위해 점점 더 적은 수의 아이를 낳게 됐다. 더 많은 여성들이 출산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피임을 한다.
그러나 여성 노동에 대한 이런 전례 없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성 억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한 특징으로 남아 있다. 이 억압의 심장부에 가족 제도가 놓여 있다. 주부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여성의 가장 자연스럽고 중요한 역할이라는 관념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이것은 여성이 집안에서는 아무런 보상 없이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일하고 집 밖에서는 노동자로서 싼 값
신체에 대한 여성의 결정권을 뺏으려는 것도 여성 억압의 일부다. 옛부터 여성이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도록 클리토리스를 자르거나, 성관계를 출산의 수단으로만 여기게끔 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있었다.
여성은 성에 대해 알아서는 안 되며 성관계에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게 정상이라는 생각, 아이를 낳을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은 여성을 가사 노동과 육아에 안성맞춤인 종속적 존재로 취급하려는 것이다.
여성의 지위는
노동계급 여성의 처지는 호화 옷을 입는 재벌과 장관 부인, 국회의원과는 다르다. 모든 계급의 여성들과 연대감을 호소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생각과는 달리, 여성해방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노동계급이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통해 여성 억압의 물질적 뿌리를 제거하기 시작할 때만 여성들은 여성의 몸과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