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대선 투표 전술에 대한 정기인 동지의 의견을 반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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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기인 씨가 쓴 '노동자연대다함께의 대선 투표 방침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는 독자편지에 대한 반론이다.
정기인 동지는 노동자연대다함께 운영위원회의 문재인에 대한 비판적 투표 입장에 반대해, “문재인이나 김소연(혹은 김순자 등) 후보 둘 다 열어 놔야 한다” 하고 주장한다.
정기인 동지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는 데서 드러나듯이 이번 대선에서 “실질적으로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후보는 김소연” 후보이므로 “노동계급의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김소연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박근혜는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완전 공감”하고 있어서 문재인에 대한 지지도 열어 둘 수는 있다고 보는 듯도 하지만 말이다.
정기인 동지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정치적 계승자이고, 민주통합당 자체가 친자본주의적 포퓰리스트 정당이므로 집권한다고 해도 다가올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계급을 공격할 것이 너무 뻔하다. 따라서 진보 혹은 좌파의 독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김소연 후보를 비롯해 이정희·김순자 후보 모두,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 후보임이 틀림없다. 세 후보 모두 투쟁하는 노동운동 활동가들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기인 동지의 주장과 달리, 김소연 후보가 “실질적으로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후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이정희·김순자 후보도 마찬가지다. 애석하게도 노동계에서만 세 후보가 분열해 출마한 결과다.
이는 직전 세 차례의 대선들과 두드러진 차이다.
1997년은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대중 파업의 효과로 노동계 독자 후보가 출마해 선진 노동자 수십만 명의 지지를 받을 것이 확실했으므로, 혁명가들은 당시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옳았다. 비록 수백만 노동계급 성원들이 일당국가에 대한 반대 염원을 담아 김대중을 지지했으므로, 김대중에게 투표하려던 노동자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 그런 전술을 내놔야 했겠지만 말이다.
2002년과 2007년도 마찬가지다. 이 때도 노동계 독자후보였던 권영길 후보는 각각 96만 표와 72만 표를 얻었다. 적어도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선진적인 30~40퍼센트는 권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다.(독자 후보 지지자 전부는 아니지만 그 중 일부는 당시에는 권 후보를 지지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독자 후보 전술을 목소리 높이는 경우도 있는데 내 생각에는 일관성이 없다.)
올해 대선은 박근혜와 문재인으로의 양극화가 매우 강력한 분단선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올해 대선에서도 수십만의 계급 투표를 조직해서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이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할 수 있는 후보가 있었다면, 선진 노동자들은 그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통해 계급의 힘을 보여 주려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힘의 대결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올해 대선에서 노동계 후보들이 세 후보로 분열했고 민주노총 등의 조직적 지지를 받는 후보도 없는 상황에서, 노동계 후보들의 득표는 매우 저조할 것이 명백한 상황이다.
선거를 단지 선전 활동으로 접근한다면, 득표수는 그다지 고려 사항이 못 될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단지 선전의 공간만은 아니다. 비록 파업과 대중 시위, 봉기 등의 직접행동을 동반한 계급 투쟁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선거는 계급 세력 간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장이다.
즉, 선거도 일종의 힘의 대결이다. 따라서 득표수를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부르주아 국가 기구의 일부를 선출하는 선거는 계급 세력 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왜곡되게 반영하긴 한다. 따라서 친자본주의 후보가 받는 득표수와 노동계 후보가 받는 득표수를 기계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독자 후보는 민주노총 소속 선진 노동자들 수십만 명의 지지를 포함한 의미 있는 득표를 얻을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전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노동계의 세 후보는 유의미한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그 대신 현재 상황은 좌파의 의사와 무관하게 적어도 조직노동자 1백만 명 이상의 표가 문재인에게 모아질 것이 확실한 상황이다.
선진 노동자 수십만 명과 노동계급 대중 수백만 명이 문재인에게 투표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계급 의식의 후퇴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 정권을 경험하면서 본능적으로 문재인과 민주당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박근혜라는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노동자들은 더 싸우기 쉬운 상대를 고르려는 것일 수도 있다. 문재인이 당선된다면, 김대중 당선이나 노무현 당선 때만큼 열광은 없겠지만, 더 싸우기 쉬운 상대를 골랐다는 점 때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그리고 더 자신감 있게 투쟁에 나서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기인 동지는 김소연 후보를 포함해 노동계의 세 후보를 지지하는 노동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동계 후보에 대한 지지도 열어 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노동계의 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당연히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선진 노동자들이 포함돼 있다. 우리는 투쟁 속에서 그런 노동자들과 소통해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러나 선거는 수백만 노동계급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정치적 경험은 사회 변혁의 결정적 힘인 노동계급의 투쟁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선진 노동자 수십만 명이 이끄는 수백만 명의 대중 행동을 통해서만, 즉 혁명가들이 대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서만 해방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사회주의자들과 선진 노동자들은 현 단계 노동계급 대중의 정서를 고려해서 그들과 함께 효과적으로 투쟁하는 데에 도움이 될 선거 전술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문재인에게 투표하는 것을 통해 노동계급 대중 수백만 명과 소통하려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문재인에 대한 환상을 부추겨서는 안 되듯이, 김소연 후보 등을 지지하는 일부 투쟁적인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소통한다는 이유로 계급 투쟁의 냉엄한 진실을 숨기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김소연 후보 등을 지지하는 일부 투쟁적인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선진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노동계급 대중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능력이 아니라 노동계급 대중의 행동을 이끄는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실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