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대선 투표 전술 논쟁에서 몇 가지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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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연대다함께의 대선 공식 입장에 대한 좌파들의 비판에 반론을 가하면서 나타난 동지들의 견해에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민주당이 시험대에 오르면, 즉 청와대로 보내면 ‘단두대’에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좌파와 진보가 이들을 잘 비판하면 사회적 투쟁이 일어날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는 단계론적 환상에 가깝다. 선거에 환상을 갖지 말자고 했건만 그것을 강조하다 보니 일부 동지들에게 문재인은 만만하다거나 문재인이 되면 변혁이 앞당겨질 것 같은 ‘환상’으로 넘어온 것이다.
이런 기계론은 어째서 김대중 5년 동안 당하고도 연이어 노무현이 당선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고, 어째서 ‘상대하기 만만하다던’ 민주당 정부들 시절에 더 많은 열사와 노동 구속자들이 나왔는지 설명할 수 없다. 반대로 왜 신한국당, 한나라당 정부들 시절에 그토록 열심히 싸웠는지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민주당 지지가 아닌) 문재인 투표로 강조점이 옮겨지고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서 비판하다 보니 박근혜가 집권하면 폭압의 도가니가 될 것이고 그 반대는 유리한 국면이 쏟아질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떤 정당이 집권한 시기에 처한 대중투쟁의 압력과 자본의 위기 등 세력 관계를 반영해 설명하는 것이 명확한 그림이다 하겠다.
작년 말~올해 초 한나라당과 민주당 시절 환멸의 대안으로서 진보정치가(유시민 등 친노 일부를 포함해) 한국 사회의 정치적 공백을 획득할 것이라고 ‘단계론적’으로만 예상했다면, 실제 까놓고 나니 보수적이었던 안철수가 약진했고 (지금 분위기에서는) 나아가 차기 대통령을 예약해 놓은 정도의 영향력을 획득했는지 설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계론적
선거의 당락에 의해 단계적으로 사회의 급진화가 진행된다면 어째서 사민주의가 1백 년이 넘도록 생존했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사민주의 정당들은 시작할 때 공공연히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혁명을 이야기하던, 엥겔스 등 혁명가들이 관여했었던 정당들이었다. 당원도 1백 만이 넘는 정당들이었고 스탈린주의라는 혁명의 결정적 질곡도 없던 시기의 당들이었지만 엉뚱하게도 자본주의의 생명줄을 연장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개혁주의의 생명줄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러운데, 무엇보다 민주당과 연립하려고 하던 진보 세력들의 힘은 운동 내 소수가 아니다. 결국 민주당이 선출되고 진보가 제대로 비판하기 만무할 확률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하물며 진보정치가 내분에, 보수정당의 꽃놀이패로 전락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보다 대중 투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 투쟁이 일어나기 위해서 노동계급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 인지가 중요하고, 조직력이 어느 정도이고, 투쟁을 발생시킬 뇌관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검토하는 것이다.
둘째로 지금 청와대로 민주당을 보내자고 선동하는 것과 민주당에 투표하되 아무런 환상도 갖지 말자고 하는 주장은 어떻게 달라 보이는가? 대선에 나가 유의미한 득표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실질적인 문제를 배제하지 말자는 주장과 1퍼센트도 득표하지 못할 거면서 왜 나가는지 모르겠다고 (사실상 무시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떻게 달라 보이는가? 그래서 일단 어감부터 상당히 중요하다.
민주당을 청와대로 보낸다는 결론은 같다고 하더라도 강조가 잘못됐다. 우리가 그렇게 주장해 버리면 민주당의 주장과 다를 것이 없게 보일 수 있다. 또한 민주당이 청와대로 들어가면 마치 단두대로 보내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선거에 대한 단계론적 환상’이라는 맥락에서 나왔기 때문에도 그 표현을 지지할 수 없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이 예전에 진보정당을 지지할 때와 비교해 보면 이처럼 냉소적으로 지지한 경우는 없었다. 사실 이 정도로도 분명한 우리의 의사와 정서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본다.
내 주변의 어떤 동지는 김소연 선본 등 선본들이 1퍼센트도 득표하지 못할 거면서 왜 나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그 동지의 그 말을 쌍용차 노동자들 앞에서 한다면? 비록 쌍용차 노조의 입장은 박근혜 그림자 투쟁이지만 그들의 지도부와 철탑 농성자들은 김소연 후보 지지자들이다. 노동자들은 문재인에게 어쩔 수 없이 표를 줄 것이고, 그들의 헌신적 지도부와 목숨을 건 철탑 투쟁을 하는 동지들이 지지하는 선본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은 부적절할 것이다.
올바른 입장을 도출했다면 또한 그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주장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오해를 주는 주장을 해 버리거나(표현의 문제), 주장을 해야 할 때 침묵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노동자연대다함께의 대선 투표 전술과 관련해 ‘[논쟁] 계급 대중 속에 파고 들어가야 ‘사회주의 정치 전면화’도 가능하다’, ‘[논쟁] 혁명가와 2012 대선 ― ‘노건투’의 비판에 답하며’를 읽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