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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선 평가:
민주당 배신의 득을 본 아베의 불안한 앞날

12월 16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다수 의석(총 4백80석에서 2백94석)을 확보했다. 이로써 아베 신조는 지난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총리직에 오르게 됐다.

아베 신조는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로서, 보수 반동의 생물학적·정치적 계승자다.

아베의 집권에도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 일본 반핵 운동 12월 8일 일본 반핵 시위대가 빗속을 뚫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일본 좌파 주간지 〈젠신〉

아베는 군대 보유 금지와 교전권 포기를 규정한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군대화하고,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국이 직접 적의 공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동맹국이 군사 공격을 받으면 무력 개입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20세기 식민지 지배와 아시아 침략, 그 과정에서 일어난 범죄 행위들을 결코 인정하지 않고, “지난 총리 시절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것이 통한으로 남는다”고 하는 등 극우적 본색도 숨기지 않았다.

아베의 이런 주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꿔 온 일본 지배계급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이미 그는 2006~07년 재임 시절 방위청의 방위성 승격, 개헌 절차를 규정한 국민투표법 강행 통과, 애국심 교육을 내건 교육기본법 개정 등 일본의 재무장에 필요한 조처들을 도입한 바 있다.

자민당은 31석을 얻은 공명당과 연합할 경우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넘어 참의원 부결안을 재가결할 수 있고, 개헌안도 발의할 수 있다. 54석을 얻어 제3당으로 떠오른 일본유신회와 힘을 합치면 중의원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 일본유신회 대표 이시하라 신타로는 공공연히 핵무장을 주장하는 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일본 공식 정치의 우경화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 보고 있다.

그런데 투표 결과를 찬찬히 뜯어 보면, 자민당이 결코 득의양양할 처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부 언론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자민당의 압승”이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한 그림은 ‘민주당의 참패’와 그에 따른 ‘자민당의 어부지리’다.

2009년 민주당은 ‘탈미입아脫美入亞(대미 중시에서 벗어나 아시아 관계를 우선함)’,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 증세 없는 복지 등을 내걸며 변화를 바라는 대중의 열망을 등에 업고 ‘55년 체제’(1955년부터 시작된 자민당 일당 우위 체제)를 무너뜨렸지만, 지난 3년간 이런 변화 열망을 철저하게 배신했다.

특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은 사람들의 분노를 키웠다. 게다가 민주당 정부는 이런 재앙을 보고서도 핵발전소 재가동을 강행했다. 그래서 이번에 민주당은 총선 전 의석 수(2백30석)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57석을 얻었다.

자민당은 이런 민주당의 실패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은 것뿐이다. 마치 2007년 한국에서 ‘이명박 당선의 1등 공신은 노무현’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베조차 “국민이 자민당을 신임했다기보다는 잘못된 민주당 정치를 심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사이익

다수 일본 대중은 자민당을 적극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어느 당도 대안이 아니라고 여겨 투표에서 기권했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59퍼센트로 전후 사상 가장 낮았다. 2009년 총선 투표율인 69퍼센트보다 10퍼센트나 낮아졌다.

실제로 총선 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40~50퍼센트가 부동층이었다. 또, 자민당 아베(28퍼센트)는 민주당 노다(19퍼센트)보다 지지율이 높았지만 “두 사람 다 아니다” 하는 응답이 47퍼센트로 압도적으로 많았다(NHK조사).

자민당 비례대표 지지율은 20퍼센트대로, 2009년 자민당이 참패했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자민당 비례대표 의석은 55석에서 57석으로 단 2석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역구 선거에서도 전체 유권자 가운데 자민당의 득표율은 25퍼센트 수준이다.

심지어 자민당의 전체 득표수는 2009년보다 지역구 1백66만 표, 비례대표 2백19만 표가 준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의 배신에 실망한 사람들이 아예 투표장에 나오지 않으면서 자민당이 어부지리를 얻은 것뿐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본의 보수언론들조차 자민당에게 “자만하지 말고 겸허히 행동하라”며 충고하고 “일본이 우경화된 게 아니라 국회만 우경화됐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이번에 당선한 국회의원들 다수가 헌법 9조 개정에 찬성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반 대중 사이에서 헌법 9조 개정에 대한 여론은 찬성(40.9퍼센트)과 반대(41.4퍼센트)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도쿄신문〉). 자민당 의원 대다수가 핵발전소 추진파이지만 일반 국민 사이에서는 반핵 여론이 높다.

한편, 일부 언론들은 ‘탈원전 세력’이 참패했다고 보도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탈원전”을 전면에 내세운 일본미래당이 대거 낙선한 것은 탈원전을 내세워서가 아니라, 이들이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온 믿을 수 없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2030년대까지 원전 제로”를 말하면서도 집권 중에 핵발전소를 재가동한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 반핵 운동의 목소리를 선거에 반영하려는 시도는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은 듯하다. 예컨대, 반핵 NGO들의 지지를 받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는 약 97만 표(15퍼센트)를 얻어 2위를 했다. 일본 반핵 운동 단체인 ‘모든 원전을 지금 당장 없애자! 전국회의(NAZEN)’도 스기나미구에서 후보를 냈는데, 이시하라 신타로의 아들이자 이 지역에서 내리 5선을 한 이시하라 노부테루에 맞서 25퍼센트(2위)를 득표하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자유주의 세력의 무능으로 첨예한 정치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좌파가 설득력 있는 정치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일본유신회와 같은 극우파 포퓰리즘 세력이 정치적 공백을 메울 수도 있음을 보여 줬다.

아베 정부는 매우 불안정한 정부가 될 듯하다. 아베는 헌법 개정이나 핵발전소 재가동 등을 추진할 테지만, 이것은 대중의 저항을 부를 수 있고 아베 정부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세계경제 상황도 아베 정부에 악재다. 아베는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양적 완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2013년 세계경제가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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