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성격과 ‘국민불행시대’ 추진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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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주의와 종파주의 모두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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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좌우 양극화 투표 속에 대통령에 당선한 박근혜가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가 될 거라는 소리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경제 침체가 한국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오는 상황에서 재벌, 고위관료, 조중동, 옛 군부세력 등 1퍼센트 반동적 지배자들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똘똘 뭉쳐서 박근혜의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당선 기자회견에서 “국민대통합”을 강조했지만, 당선 직후 그가 만나 감사와 축하 인사를 주고받은 이들은 정몽구 같은 재벌 오너들이었다. 탄압과 장기 투쟁에 지쳐 목숨을 끊거나 지금도 철탑 위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노동자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사실 박근혜 정치 기반의 뿌리는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이다. 정치 일선에 들어선 뒤에는 ‘TK+민정계+사학재단’ 같은 반동적 기득권층이 그의 든든한 기반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내각이나 실세로 중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군을 봐도, 이한구·진념·김광두·안종범 등 모두 강경한 신자유주의 우파들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면면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반만 봐도 박근혜 정부는 명백히 친재벌 신자유주의 강성 우파 정부를 예고한다.
국제적으로도 세계자본주의 지배자들은 2008년 경제 위기 직후 국가 개입과 경기부양에 돈을 쏟았지만, ‘긴축과 내핍 강요’라는 신자유주의 기조는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우파 결집을 추구하면서도 말은 ‘복지·경제민주화’ 등 포퓰리즘을 앞세웠던 박근혜도 선거 막판에는 ‘내가 말한 경제 민주화는 [5년 전] 줄푸세 공약과 다르지 않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가 기본적으로 취할 방향은 분명하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노동계급 생활수준을 공격할 것이다. 미국 중심의 친제국주의 정책도 유지할 것이고, 대북 문제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냉전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이 저항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민주적 권리를 축소하고 사회 분위기가 오른쪽으로 옮겨가도록 시도할 것이다.
2013년 예산도 신자유주의적 균형예산 기조로 확정하면서도 제주 해군기지 예산은 전액 보전됐다. 군부는 박근혜 당선 직후 발간한 ‘2012 국방백서’에 NLL이 국경선이라고 못박았다. 검찰은 해묵은 일을 끄집어내 국가보안법 마녀사냥도 다시 벌이고 있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반동적 성격과 의도를 밝히는 것이 상황이 그들의 뜻대로만 흘러갈 거란 뜻은 아니다. 어떤 행위주체도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고 의지만으로 세상을 주조할 순 없기 때문이다.
반동적 성격
첫째, 곧장 이 나라가 1987년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 민주화의 핵심 동력인 노동운동의 조직과 의식이 [투지가 아주 높지는 않아도] 전반적으로 건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전가와 친기업 정책에 대한 반발로 복지 요구가 강해져 왔다. 박근혜가 “등록금 부담 절반으로”, “고교 무상의무교육 시대!” 같은 구호로 대선 현수막을 도배했던 까닭이다.
또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이회창·이인제가 얻은 표를 모두 더하면 총유권자의 약 40퍼센트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이들이 모두 결집해 박근혜로 모은 표는 총유권자의 약 38.9퍼센트다. 우파 지지층이 크게 확장됐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셋째, 게다가 박근혜에겐 내핍 정책을 ‘사회적 타협’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해 줄 정치적 완충지대 기반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이명박조차도 [실패는 했지만] 한국노총 지도자들을 끌어들였는데, 박근혜는 그조차도 없다시피하다.
그래서 박근혜는 ‘국민적 합의’란 명분으로 각종 개악에 민주당을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 자체가 하나의 완충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 정치 쟁점과 사회적 의제의 우선순위를 놓고 벌어지는 정치·이데올로기 투쟁의 주요 무대가 국회와 공식 정치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일부와 NGO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개혁주의가 득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 결과가 보여 주듯, 경제 위기 반동 시대에 개혁주의는 일관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급진좌파는 개혁주의에 이끌리는 대중 속에 개입하면서 독립적 비판과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박근혜가 표를 위해 제시했던 포퓰리즘 공약을 거둬들이는 것은 자신에게 투표했던 일부 하층 중간계급과 노동계급 후진 부위도 배신하는 것이다. 반대파가 완고한데, 정치적 완충지대를 못 갖춘 조건에서, 지지층이 이반하는 것은 재보선과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집권당의 안팎에서 상당한 긴장을 낳을 것이다.
정권을 잃을까 봐 뭉쳤던 보수대연합은 경제 위기 본격화 국면에서 민심 이반이 가중되면, 통치 방식을 놓고 분열할 수 있다. 이런 분열이 상호경쟁적 부패 추문 폭로를 부추길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은 억눌리던 민중한테 저항에 나설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3당 합당(보수대연합)으로 정권을 연장했던 김영삼 정부가 1997년 경제 위기와 노동자 투쟁의 압력 속에서 분열한 것이 이런 사례다. 박근혜 세력 자체가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므로 부패 문제는 계속 터져나올 것이다. 벌써 인수위원회 임명자들의 각종 비리 전력이 폭로되고 있다.
경계
물론 이런 전망이 반동적 공세에 경계를 늦춰도 된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지배자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저항의 기세와 의지를 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테니 말이다. 노조이기주의 담론, ‘종북’ 마녀사냥, 각종 소수자 공격 등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며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 할 것이다.
1980년대 영국 총리 대처가 처음부터 ‘강성 노동운동을 진압한 철의 여인’이었던 건 아니다.
전면적 저항을 피하려고 파업권 약화를 위한 법 개악도 집권 후 수년에 걸쳐 단계별로 조심스럽게 추진했고, 인력 구조조정도 노동운동이 약한 부위부터 신중하게 시작했다.
영국 노동운동의 핵심부대인 광원노조는 이런 각개격파 속에서 어느새 고립됐고, 석탄까지 비축해 놓은 뒤 벌인 대처의 공격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이 패배로 영국 노동운동 전반이 침체됐다.
지금은 지배계급이 반동을 강화하는 경제 위기의 시대이므로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야금야금 먹어오는 공격에 무신경하면 노동운동이 결정적 순간에 무기력해질 수 있다. 각개격파 시도에 계급적 단결과 공동 대응을 추구해야 한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반동을 막고 모순을 이용해 상황을 노동계급에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느냐는 조직 노동운동과 반우파 청년들이 투쟁 태세를 얼마나 잘 갖추고 단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가장 나쁜 것이 비관주의에 빠져 우경화하고 전선에서 이탈하는 것이라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적을 과소평가해 단결된 방어 전선 구축에 소홀한 것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