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노조탄압법으로 둔갑한 DNA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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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수원지검에서 내 DNA를 채취해야 하니 검찰에 출석하라며 전화가 왔다. 너무나 황당했다. 이유를 묻자 2009년 기아차 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업무방해 및 폭력 관련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니 DNA를 채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사측의 고소를 일방적으로 수용해 내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 후 3년간 진행된 재판에서 내게 유리한 증언들이 거듭 나왔음에도 결국 사법부는 2012년 9월에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유죄 선고도 억울한데 이제 내 생체정보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건을 방어하기 위해 앞장서 싸워 온 노조 활동가이지 실험용 쥐나 흉악범이 아니다. 나는 연쇄살인범이나 성폭력 사범도 아니니 DNA 채취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영장을 청구하겠다고 고압적인 자세로 협박했다.
2010년에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일명 DNA법)이 인권 침해 논란 속에서 제정됐다. 법 제정도 전에 쌍용차 점거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과 용산 참사 관련된 철거민들이 강압적으로 DNA를 채취당했다.
DNA법 적용 대상은 광범위하다. 폭행, 협박, 주거침입, 퇴거불응, 재물손괴 등으로 처벌당하면 평생 유전자가 낱낱이 밝혀져 국가 기관에 관리된다.
경기경찰청은 2010년 7월 법시행 이후 지금까지 5천1백 명의 유전자를 확보했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이 절도범이다. 빵 한 조각 훔쳐도 국가는 DNA를 가져가 평생 관리하고 통제한다. 빅 브라더가 따로 없다.
박근혜는 “법질서”를 강조한다. 숱한 비리를 저지른 자를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한 것만 봐도 법질서 운운은 위선이다. 사실, 흉악 범죄를 빌미로 경찰력과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진보진영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3년 전에 진보 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DNA법을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것에 제동이 걸리는가 싶더니, 박근혜가 당선하자 칼날을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겨누고 있는 것이다.
나는 DNA 채취 만행에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순순히 응한다면 다음에는 전자발찌를 채우겠다고 협박할지도 모른다.
내가 속한 기아차지부와 금속노조, 민주노총을 포함해 진보 단체들이 연대해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검찰에서 DNA를 요구하는 전화가 온다면 거부하고 함께 대응하고 투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