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동지의 편지:
“이번만큼은 정말 이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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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희망버스’가 울산으로 출발했다.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참가해 철탑 위에서 백일째 ‘불법파견 철폐’를 요구하며 고공농성 하는 최병승, 천의봉 동지를 응원했다. 아래는 당일 최병승 동지가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보낸 편지다.
희망버스 동지들! 이렇게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제 마음속에는 꼭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2004년 11월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동조합 쟁대위가 열렸고, 저는 “천막농성과 3일간 잔업거부”를 투쟁 계획으로 제출했습니다. 3일만 우리가 잔업거부를 한다면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제출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많은 논란 끝에 투쟁이 결정되었고, 2005년 1월 투쟁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3일은 지나갔고, 답답했던 한 동지가 몸에 신나를 부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결의했던 5공장 동지들은 파업을 이어갔고, 제가 있던 1공장 동지들은 바지사장이 전달한 경고장에 숨죽여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100여 명의 동지들이 해고되었습니다.
본관 앞 천막농성장에서 1공장까지 2분이면 볼 수 있는 조합원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의장부 입구 옆 화장실로, 때로는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한잔 먹고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투쟁하는 5공장 동지들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현장을 조직할 자신이 없어 투쟁하는 동지들이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5공장 조합원들은 의연하게 250일 이상 투쟁을 이어갔고,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산화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의 삶을 책임지지 못했고, 2005년 투쟁을 하자고 목에 핏대세우며 주장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천막을 접고 떠나는 동지들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남아있는 것밖에. 그 무력감과 죄책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처가 아물기 전 2010년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2010년 CTS 파업 24일 째 저는 체포영장이 떨어졌고, CTS파업에 동참 할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집행유예가 1년 11개월이나 남아있었기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실제는 몇 년을 또 철창에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조합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점거파업을 풀고 CTS를 내려와야 했습니다. 파업을 철회했다는 억울함보다는 구속이 두려워 또 다시 동지들을 등져야했던 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 많이 울었습니다. 2005년, 2006년, 2010년 3차례의 파업 기간 전 끝까지 동지들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동지들을 실망시킨 저를 조합원들은 사랑으로 감싸 주었습니다. 또 하나의 엄마처럼 괜찮다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저를 위로 하였습니다. 그 동지들이 또 다시 102일 동안 저를 보살펴주고 있습니다.
100일째 되던 날 함께 농성하고 있는 의봉이가 “형님, 솔직히 60~70일이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네요” 참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우리가 이 투쟁을 승리하지 못한다면 또 누군가 해고되고, 수배되고, 구속되고, 손배가압류에 힘들어 할 것이고, 의봉과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힘들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제가 겪었던 그 끔찍한 고통과 무게를 의봉이 짊어지고 가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0년 CTS 25일 파업 일수 보다는 조금 많이 버티자”고 설득하여 올라온 저는 또 어떨까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만큼은 정말 이기고 싶습니다.
노동 관련 행정기관이 2004년, 2011년, 2012년 줄줄이 ‘불법파견이며, 정규직이다’고 판정하고, 사법기관이 2007년, 2010년, 2012년에 “현대차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고, 2년이 경과한 노동자는 정규직이다”고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는 아직도 사내하청노동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런 상관없다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현대자동차 명찰을 단 사람들이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계속 물어봅니다. 2차 업체 현대세신, 태형산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도, 2차 업체 임금인상과 성과금 문제를 해결한 것도 현대자동차였습니다. 1차 업체는 어떻습니까? 파업을 하면 실무 교섭과 본 교섭 테이블 앞에서 파업 자제를 요청하는 것도, 제시안을 내는 것도 현대자동차였습니다. 손해배상을 하는 것도, 형사 고소·고발을 하는 것도, 징계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도 현대자동차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내하청노동자와 상관이 없단 말입니까?
너무 상관이 많아서, 10년이 넘게 현대자동차를 성장시킨 사내하청노동자들이 10년 동안 당신들이 불법파견을 저질렀고, 대법원이 판결했으니 불법으로 차별하고 착취한 모든 사내하청노동자에게 사과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왜? 10년 동안 불법을 저지른 현대자동차는 이해하면서 10년 넘게 불법적으로 착취당한 노동자들의 분노는 불법으로 매도하며, 엄정한 기준과 잣대만을 들이밀려 하십니까? 그리고 현실을 말하면서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10년 간 모진 시련을 겪으면서까지 이 투쟁을 하고 있는 그 처절한 모습은 외면하려 하십니까?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차별 받고 착취 받는 현실을 인정했다면 10년을 싸우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불법파견 진정도 넣지 않았을 것이고, 한 사람의 죽음과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가슴에 묻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아니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본이 세우는 줄에 우리의 몸을 맡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당당히 그 현실을 바꾸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한 깔딱 고개 앞에 와있습니다.
동지들!
10년의 풍랑을 꺾어 전사가 되어버린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바로 봐 주십시오. 이들이 스스로만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면 현대차가 그렇게 읍소하는 신규채용 원서를 접수했을 것입니다. 스스로만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면 임금손실과 징계 협박을 듣고 이 자리에 남아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스로만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면 10년간 투쟁하는 미련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현실적 조건을 앞세워 타협과 중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자동차와 제대로 맞짱 뜰 수 있게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정몽구 뒤에 숨어서 불법파견 문제를 은폐하고, 노조를 탄압해서 이 투쟁을 분탕질하는 현대차의 야비함과 치졸함을 폭로하고, 진짜 사장 정몽구가 전면에 나올 수 있게 함께 만들어 주십시오.
더 이상 현실을 넘어서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3지회 의견이 다르다느니? 조합원 생각이 다양하다느니? 동력이 없다느니? 원칙만 있다느니? 이런 말 하지 말아주세요. 10년간 들었습니다. 그래도 스스로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을 가지고 지금까지 투쟁하고 있지 않습니까? 힘이 없으면 쉬어가기도 했지 않습니까?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발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동지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입으로 물어봐주십시오. 그리고 얻고자 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해서 떠나간 동지들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제 마음에 있는 빚도 갚고, 의봉에게 짐도 주지 않게 만들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이 고공에서 다시는 동지들을 만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3년 1월 26일 철탑농성 102일차 최병승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