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회복됐다고?:
낮은 수익성 때문에 봄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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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낙관적 전망은 이번 세계경제 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에서 몇 가지 경제지표들의 호전이 근거가 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3.1퍼센트였고,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중국의 4분기 경제성장률이 7.9퍼센트를 기록해 3분기의 7.4퍼센트에서 반등했다는 점도 거론된다. 더 나아가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의 남유럽 국가들(이른바 PIIGS)에서 자본 순유입이 관찰됐다는 점도 이런 낙관적 전망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그러나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몰고 오지는 않는 법이다. 2012년의 세계경제는 미국·유로존·일본의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중국·브라질·한국 같은 신흥공업국들의 경기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여 줬는데, 올해에도 이와 같은 모습이 재현될 공산이 크다.
세계은행도 2013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경제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을 뿐 아니라(3.0퍼센트에서 2.4퍼센트로), 미국 경제와 일본 경제는 지난해보다 더 낮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유로존은 지난해(-0.4퍼센트)에 이어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0.1퍼센트)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2012년 개도국 성장률은 5.1퍼센트로, 지난 1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올해 주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경제가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경기부양책은 자본의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효과를 내면서 자산 거품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
유동성 함정
미국 경제는 지난해 3분기의 깜짝 성장(3.1퍼센트) 이후 4분기에는 다시 -0.1퍼센트로 후퇴했다. 미국의 민간투자는 이번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1996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 정부가 세 차례 양적완화를 통해 통화를 공급하고 금리를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음에도 기업의 투자는 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도 경제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의 9퍼센트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7퍼센트 대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양적완화로 인해 풍부해진 유동성이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원자재 매점매석 같은 자산 거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실제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주식시장이 호전된 것이 아니라 양적완화로 자산 인플레이션이 형성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고,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빌 그로스는 신용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예상치 못한 붕괴를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재정절벽 협상이나 3월 1일 만료 예정인 ‘시퀘스터’(자동적인 예산삭감) 같은 사건이 가져다줄 파열음과 긴장보다는, 수익성의 정체로 인한 무기력한 ‘회복’이 더 큰 문제다. 올해 미국 경제는 유로존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세계경제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는커녕 여전히 정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가시밭길의 유로존
유로존 경제는 회복되고 있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위기가 그 중심부로 확대되고 있는 형국이다.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은 2013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6퍼센트에서 0.4퍼센트로 낮췄고,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올해 성장률이 -0.5퍼센트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로존 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견실했던 독일과 네덜란드의 실물경제가 침체하고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의 무제한적인 국채 매입과 저금리 정책 때문에 자본이 몰리고 있는 독일에서는 부동산 거품의 우려도 등장하고 있다.
친자본주의적인 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의 유럽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볼프강 뮌차우는 유로존 상황이 ‘좀비 은행’과 ‘거시경제 조정’이라는 두 가지 문제점 때문에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EU에서 출범할 ‘단일 정리 체제’(단일 기관이 동일한 기준으로 청산이나 회생 등 부실은행 정리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체제)가 “채무국의 은행 파산으로부터 채권국 납세자를 보호하는 데 그칠 뿐 부실은행 정리 속도를 높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그는 “현재 유로존 은행들에 부족한 자금은 5천억에서 1조 유로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면서 “손실을 좀더 솜씨 있게 감췄을 뿐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도 문제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유로존 경제는 그리스보다 더 거대한 스페인의 국가 부도 위기와 씨름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제결제은행(BIS) 조사를 보면, 스페인 은행들이 유럽 은행들에 갚아야 할 자금은 4천3백72억 유로(6백50조 원)로, 그리스의 6곱절에 이른다.
유럽 24개국에 대한 스페인의 채무액은 1조 9억 달러에 이른다. 이 때문에 지난해 6월 스페인이 확보한 1천억 유로의 구제금융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스페인 국가와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할 채무액이 크다는 점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스페인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스페인 경제성장률은 -1.7퍼센트였다. 스페인 정부가 추진하는 2백70억 유로의 재정감축안에다 라호이 총리가 새롭게 1백억 유로의 새 긴축안을 내놓았다.
이런 노력에도 스페인의 재정적자는 더 늘어날 전망인데, 이는 고강도 내핍정책이 경기를 위축시키고 세금 수입을 줄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24퍼센트로 유럽연합 국가들 중 최고이고, 청년 실업률은 50퍼센트에 이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라호이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모금 의혹 등의 사건에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치솟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스페인 경제 상황은 올해 유로존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이웃 거지 만들기 정책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국 지배자들의 정책 도구는 재정정책, 통화정책, 환율정책이 있다. 미국과 유로존 국가들이 저금리와 통화량 증대 정책들을 추구하고 있다면, 일본 아베 정권은 이에 더해 환율정책까지 추진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10조 엔의 재정을 투입하는 경기부양책에다 일본판 양적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 2개월 동안 엔화는 달러화와 유로화에 견줘 각각 20퍼센트, 25퍼센트 평가절하 됐고, 이 덕분에 수출 기업의 수익성이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사실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 자본주의로서는 환율 조정을 통한 수출경쟁력 회복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나서 일본의 엔화는 실질가치로 봤을 때(상대적 인플레율을 고려했을 때) 30~40퍼센트나 평가절상된 반면 영국 파운드화는 25퍼센트 하락했고, 유로화는 10~15퍼센트 하락했다.
이런 환율 변화 때문에 일본의 경상수지는 2009년 4조 엔 흑자에서 2011년 1조 5천8백억 엔 적자로 급락했다. 경제성장률도 2009년과 2011년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의 경기부양책과 엔화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경쟁력 회복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본 경제의 정체는 이미 20년 넘게 지속돼 오고 있는데, 금리 인하와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책 모두 효과가 없었다.
다른 한편, 엔화 평가절하는 이미 독일과 프랑스 등에게서 견제와 반발을 사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는 “유로존도 환율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 환율에 종속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프랑스 수출 기업의 걱정을 반영한 것이다.
1929년 대공황 때도 영국을 선두로 미국, 일본, 독일 등이 금본위제에서 이탈해 자국 통화가치를 낮췄지만 이런 조처가 공황을 끝내지는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과 경기부양책이나 통화팽창의 부재 때문에 침체돼 있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는데, 바로 일본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는 자금이 과도하게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도한 저축’은 일본 자본주의의 낮은 수익성을 반영하고 있다.
내핍과 경기부양의 탱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세계경제의 기관차로 불리던 중국이 이제는 경착륙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7.8퍼센트를 기록해 13년 만에 8퍼센트를 밑돌았다.
중국 지배자들은 고도성장과 고용을 위해 유지했던 8퍼센트 정책을 지난해 말 개최된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사실상 포기했다.
미국과 유로존 경제 위기로 인해 중국산 제품의 판매가 급감하고 이것이 중국 내 민간투자의 급속한 위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지배자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대규모 경기부양 정책과 함께 국유상업은행을 통한 대출 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부동산 거품, 투자의 국가부문 비중 증대, 지방정부의 재정악화, 국유상업은행의 잠재적 부실 증대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이나 유로존 국가와 마찬가지로 수익성 악화라는 공통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런 수익성 악화가 투자의 위축을 낳고 이것이 경제 회복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지배자들은 한편으로 내핍(임금, 연금, 복지 등의 각종 삭감)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수익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유리한 경기부양책을 펼친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 아베의 사례처럼 다른 국가의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환율정책을 펼 수도 있다. 이것은 이른바 ‘환율 전쟁’을 초래할 것이다.
경제적 경쟁과 군사적 경쟁은 경제 위기 때 각국 지배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다. 2013년은 세계경제의 회복이 지지부진하면서 경제적 경쟁과 국지적으로는 군사적 경쟁이 점점 더 가열돼 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