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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 위로, 거리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에게:
박근혜의 비정규직 대책은 답을 안 주고 있다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힘쓰겠다.”

취임식 날 박근혜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 참석해 한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희망 복주머니’ 쇼를 벌이며 위선을 떠는 동안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는 멈추지 않았다.

1백40일 넘게 송전탑 위에서 폭설과 칼바람을 견디며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외치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새해 벽두부터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려 ‘해고 철회’를 외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

박근혜가 생색내기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는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하루 전 해고 통지 받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전화 상담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미진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이런 노동자들에게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정부 정책 자체가 위선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대표적인 비정규직 대책은 두 가지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사내하도급법 도입’.

정부와 보수언론은 이 두 방안이 “차별 해소와 근로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지만, 사내하도급법은 이미 “정몽구 보호법”이라고 질타를 받아 온 대표적인 반노동 정책이다. 이 법은 불법파견을 ‘합법’으로 둔갑시켜, 정몽구 같은 자들에게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피할 길을 열어 준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와 투쟁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약도 진작부터 모순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박근혜의 약속과 달리, 연초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 지자체 방문간호사, 도로관리공단, 경북대병원, 보건복지정보개발원, 정부출연 연구원 등등.

공공기관들은 ‘2년 이상 근무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의무를 피하려고 마구잡이식 해고를 일삼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박근혜의 정책도 한몫하고 있다. 박근혜가 후보 시절 약속한 정규직 전환 완료 시점(2015년) 전까지 인력을 감축해, 정규직화 대상자 규모를 줄이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2년 이상 비정규직 정규직화)이 노동자 대량해고로 이어졌던 “2007년의 악몽”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둘째, 안 그래도 박근혜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대다수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꾀죄죄한 내용이었다. 올 초 고용노동부는 이 정책의 대상자 규모가 10만 명이 넘지 않을 것이라고 집계했다. 직접고용 노동자들만 해당하면 4만 6천여 명 수준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1백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단 5퍼센트도 안 되는 수치다. 이를 두고 “완전 정규직화”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악몽

셋째,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내세운 “공정 임금”, “차별 시정” 대책도 매우 보잘것없다.

박근혜는 이미 대선 후보 시절에, ‘최저임금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퍼센트로 인상하라’는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영세기업들이 문을 닫는 등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난하기 바빴다. 밑바닥 노동자들의 생활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경총의 최저임금 인상 반대 논리를 되풀이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이번 국정과제에서 제시한 ‘최저임금 인상 기준 마련’에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새누리당은 ‘상여금·성과금의 차별 금지’를 담은 기간제법·파견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이미 임금 차별을 금지한 현행법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고용불안 때문에 사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보장된 차별 시정 요구조차 제기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래서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고용불안을 해소할 방안이 없[는 한,] 법안의 실효성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즉, 비정규직의 사용사유 제한, 간접고용 금지, 파견법 철폐 등 알맹이가 빠져 있는 “차별 시정”은 실질적 개선을 담보할 수 없다.

박근혜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제시한 산재·고용보험 가입 확대 등의 공약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현행법상으로도 보험모집인이나 캐디 등 일부 업종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가입률이 1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보험료 전액을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인 법적 노동자 지위 인정과 노동기본권 보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물론 이런 모순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박근혜의 ‘선심성’ 공약들을 이용해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예컨대,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박근혜는 정규직 전환 약속 이행하라” 하고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온갖 차별과 멸시, 고용 불안에 허덕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광범한 사회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지 오래다. 이미 한국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인데다,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경제 위기의 한파를 견디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는 말로나마 생색내듯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법원이 “자동차 생산공장에서는 합법 도급이 불가능하다”며 한국GM(구 GM대우)의 불법파견을 유죄로 인정하고, 고용노동부가 신세계 이마트 노동자 1천9백78명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배자들 내에서도 비정규직 관련 법·제도 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노동운동은 이런 모순을 잘 파고들며, 기회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서도, 그 모순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이를 이용해 운동을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내하도급법 도입 시도 등 공격에도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