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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일본은 어디로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②:
본격화한 일본의 재무장을 누가 막을 것인가

 두 차례 연재를 통해 1) ‘평화’헌법이 형성된 배경과 모순 2)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살펴본다. 이번이 그 둘째다.

“북한이 로켓을 빨리 쏘면 좋겠다.” 지난해 말 일본 관방장관은 무심코 자기 본심을 드러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은 최근 북한 핵실험을 기회 삼아 군사대국화에 박차를 가하려 한다.

최근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북한 미사일] 기지 공격은 헌법상 자위권 범위에 포함된다”며 선제공격론에 해당하는 섬뜩한 말을 했다. 일본 지배자들은 ‘평화’헌법* 개정을 서두르고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 지배계급은 지난 20년간의 경기 후퇴,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속에서 군사력 증강 야욕을 키워 왔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위상을 추월한 중국의 부상은 이를 더한층 자극했다.

미국은 ‘중국 견제’라는 목표 아래 동맹국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겨 왔다.

1990년대 초에 본격화한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전후 냉전기 동안의 일본 자본주의 성장이라는 물밑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경제 ‘기적’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패전국 일본의 미래는 어두워 보였다.

그러나 일본은 1955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연 10퍼센트 정도씩 성장해, 이미 1968년에 서방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1990년대 이래 중국이 받고 있는 경제 성장에 대한 찬사는 원래 일본의 것이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유럽과 미국보다 월등히 높았다. 미국이 안보를 책임져 준 덕분에, 일본은 군비 지출을 GDP의 1퍼센트 정도로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돈을 산업(기술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의 ‘반공 방벽’으로 키우려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은 핵심 산업 기술을 일본에 공짜로 넘겨주고, 일본의 국내시장 보호 정책을 눈감아 주고, 미국 시장을 개방해 줬다. 미국 경제는 막대한 군비 지출로 한동안 호황을 유지했는데, 이것은 일본(과 독일) 같은 나라들에 수출 시장을 제공했다.

일본을 대하는 미국의 ‘관대함’은 일본 정부가 전략 산업으로 정한 산업들에서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는 현상이 분명해질 때까지도 계속됐다.

이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며 일부 일본 지배자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1971년 미 국방정보국이 쓴 ‘일본 방위 정책의 진전’이라는 보고서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이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국력에 필요한 군사 능력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일본 내에서도 민족주의 감정의 증대로 인해 특히 국가 안전 보장을 타국에 의존[하는] … 것에 깊은 불만을 나타내는 집단도 있다.”

이 보고서는 특히 ‘재계가 방위력 증강을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지배자들의 관심은 먼저 아시아를 향했다. 1970년대 초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 최대 투자자였기 때문이다. 아시아로 진출한 자본을 보호하고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려면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돼야 했다.

그러나 이들의 관심은 아시아에서 멈추지 않았다. 일본 자본주의는 중동 석유에 크게 의존(전체 석유 수입의 80퍼센트 차지)한다. 그래서 중동에서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석유 수송로의 ‘안정’을 지키는 것도 사활적이었다.

일본 경제는 어느 순간 미국 경제와 격차를 줄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대일 무역 적자는 미국에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1980년대가 되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커졌다. 1985년 플라자 합의*는 미국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만회해 보려는 시도였다. 이렇듯 냉전 후반기에 미국과 일본은 군사적으로는 더 긴밀해졌지만, 경제적으로는 긴장을 빚었다.

이런 상황에서 냉전 해체는 일본이 정치·군사적으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냉전 종식으로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 됐지만, 동시에 서방 열강을 자신의 우산 아래 단결시킬 명분(‘소련 위협’)도 잃어버렸다.

미국의 가장 큰 걱정은 ‘일본(과 독일)이 경제적으로 강력할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강력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통제를 벗어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걸프전

그러나 일본(과 독일)은 군사력에서는 결코 미국의 엄청난 군비 지출과 막강한 무기의 수준·규모에 비할 수가 없었다. 1991년 걸프전*은 이런 일본(과 독일)의 한계를 부각시키는 계기였다.

“걸프만 위기는 일본과 독일이 군사강국으로 발전하는 데 버티고 있는 장애물이 얼마나 큰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양국 모두 그 위기에서 주변적인 구실만을 담당했는데, 이유인즉슨 한편으로 대외 군사 개입에 대한 국내의 반대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라크전과 같은 원거리 작전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장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특히 독일).”(알렉스 캘리니코스, 《역사의 복수》)

“[또,] 일본은 걸프전에 거금 1백30억 달러를 내놓았는데도 헌법을 근거로 다국적군에 참여하길 거부했다는 이유로 [미국한테서] ‘너무 적은 일을 너무 늦게 했다’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도쿄는 이런 비판에 충격뿐 아니라 … 심지어 상처까지 받았으며 이후 헌법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자 분투했다.”(개번 매코맥, 《종속국가 일본》)

이때부터 일본은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꼼수’를 부리거나 이마저도 안 되면 헌법을 아예 대놓고 무시하는 식으로 본격적인 군국주의화 행보를 했다.

미일합동군사훈련 1990년대 초기 본격화한 일본 재무장은 ‘평화’헌법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깊어지게 했다. ⓒ사진 출처 미 해군

1990년대 일본은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1992년)과 ‘주변사태법’(1999년) 등을 통과시키면서 재무장과 해외 군사 개입의 길을 조금씩 열었다.

실천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우경화도 뒤따랐다. 과거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며 ‘자학사관*에 기초한 교과서를 수정해야 한다’는 우익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베는 이를 주도한 사람 중 하나다.

중국의 부상을 배경으로 일본은 미국의 MD 체제(당시 TMD 체제)에도 가입했다(1998년).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우려를 자극해, 냉전 이후 잠시 삐거덕거렸던 미일 동맹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일본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면서 질적으로 ‘도약’했다. 예컨대, 2001년 일본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도우려고 인도양에 이지스함을 파견했다. 이것은 10년 전 걸프전에 돈만 댔던 것에 비추면 큰 변화였다. 뒤이어 2004년 일본은 드디어 육해공을 망라한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했다. 6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군대가 전쟁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 모든 일들은 ‘평화’헌법하에서 진행됐다. 그 결과, 지난 20년 동안 헌법 문구와 현실 사이의 모순은 점차 심해졌다. 현재 일본은 세계 2위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고 정예부대로 구성된 육상자위대, 최첨단 함정과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곧장 핵무기도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다.

모순

따라서 개헌 등 아베의 시도까지 관철된다면 일본은 아주 순식간에 군사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물론 아베의 시도가 순탄하게 관철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먼저, 아시아 주변국의 ‘반일 감정’ 문제가 있다. 일본의 식민지 경험이 있는 한국과 중국의 민중은 일본의 재무장을 우려한다. 물론 한국 지배자들은 일본의 재무장을 진지하게 반대할 리 없다. 지난해에는 한일군사협정도 추진했다. 지배자들은 과거사나 독도 문제도 일본과의 협력 추진에 걸림돌이라는 점에서 접근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국민들의 우려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미일 동맹 문제다. 미국의 후원은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상당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일본이 미국의 바람 때문에 재무장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잠재된 모순도 봐야 한다.

미국은 일본이 더 강해지고 동아시아에서 더 큰 구실을 하기를 바라는 동시에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자 한다.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미일 삼각 동맹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은 일본이 독자적 핵무장까지 나아가는 것은 꺼려한다. 미국 지배자들은 북핵 위기가 일본의 핵무장을 부추기는 점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아베는 여전히 국내 반대 여론을 의식해야 한다. 최근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감으로 아베의 지지율이 오르긴 했지만,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군사대국화 행보에 대한 지지는 높지 않다. 헌법 9조 개정에 대해서 여전히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다.

최근 도쿄에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2주년을 맞아 4만 명이 국회를 둘러싸고 ‘원전 제로’ 정책을 촉구했다. 이 운동은 일본의 재무장에 맞서는 운동으로 나아갈 잠재력이 있다. 일본의 반전 평화 운동은 강력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

물론 이런 잠재력이 실현되려면 이 운동은 제국주의와 재무장을 반대해야 할 뿐 아니라,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운동과도 만날 필요가 있다.

좌파는 이런 정치적·조직적 대안을 건설하며 일본 정치의 불안정과 양극화 속에서 목소리를 키워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쟁은 군사적 경쟁을 낳고, 이것은 재앙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낳는다. 일본의 재무장과 우경화도 이런 맥락에 있다. 이 매커니즘은 20세기 초중반에 일본이 야만적 침략으로 나아가게 만들었고, 동시에 일본 민중을 인류 최초 핵 재앙 피해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섬뜩하게도 이 매커니즘이 오늘날 다시 작동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일본 재무장에 반대하고 근본적으로는 제국주의 체제에 맞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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