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칼럼:
박근혜 정부, 한국 의료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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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민생과 복지를 내걸고 당선했다. 그런데 모든 복지 공약이 후퇴했다. 새 정부 정책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아예 빠졌다. ‘민생’이 사라진 것이다. ‘민생’ 대통령에서 ‘민생’을 빼면 뭐가 남을까? 그냥 ‘대통령’만 남는다. 이 대통령께서 추구할 정책은 무엇일까.
병원과 전봇대
박근혜 정부 출범 다음날 신임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보란 듯이 진주의료원 폐쇄 결정을 내렸다. 정부 출범 초기에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일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멀쩡하게 돌아가는 3백 병상의 병원을 하루아침에 폐쇄한다니. 동네 의원도 이렇게는 안 한다. 생각해 보라. 수술이 끝난 환자나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에게 ‘우리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하니 나가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병원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곳이다. 진료의 지속성까지 생각해 달라는 것은 이쯤 되면 사치스럽게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병원을 폐쇄하려면 최소 1년 이상 시간을 두고 그것도 환자들을 안심시키면서 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 때는 전봇대를 뽑더니 박근혜 정권에서는 ‘병원’을 뽑아버리겠다는 것인가.
그 폐쇄도 ‘적자’ 때문이란다. 적자라는 이유로 공공병원을 폐쇄한다면, 전국의 34개 지방의료원을 대부분 폐쇄해야 한다. 국립대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서울대병원부터 폐쇄해야한다. 13개 국립대병원 중 지난해 흑자를 낸 병원은 3개뿐이었다. 7퍼센트밖에 안 되는 공립병원. 이것마저 폐쇄하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시작이다.
‘4대 질환 1백 퍼센트 보장’은 원래 공약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은 처음부터 진보정당과 민주당에 견줘 협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예를 들어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총선과 대통령 선거 공약은 ‘모든 의료비에 건강보험 적용’과 ‘의료비 1백만 원 상한제’였다. 이에 견줘 박근혜 정부의 공약은 4대질환 1백 퍼센트 보장이었다. 암, 중풍, 심장병, 희귀난치성질환에는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는 공약이었다. 진료비가 5백만 원 이상 나오는 환자 중 4개 질병에 해당하는 환자는 약 1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매우 협소한 보장성 강화 공약이다.
그래도 이 구호는 상당히 호소력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공약은 2005년 1조 5천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흑자가 생겼을 때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내걸었던 ‘암부터 무상의료’를 베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꾀죄죄한 공약조차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즉, 이른바 ‘3대 본인부담 의료비’가 다 빠진다고 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원래 그런 공약이 없었다는 해명이다. 진영 신임 보건복지부장관은 청문회장에서 왜 3대 본인부담 항목이 다 빠졌냐고 묻는 의원들에게 ‘국민들이 잘못 이해한 것’이고 12월 18일에 보도자료도 냈다고 했다. 12월 18일? 전국 방방 곡곡에 “4대 중증질환 100% 국가가 책임집니다” 하는 현수막을 걸어 놓고서는 선거 하루 전에 보도자료를 내서 안 해 준다고 했단다. 복지부 장관은 아예 한술 더 떠 대놓고 “4대질환 1백 퍼센트 보장은 선거 캠페인용”이라고까지 말했다. 게다가 혹시나 해서 새누리당 웹사이트에 나온 보도자료를 다 뒤져 보아도 진영 장관이 말한 보도자료는 아예 없다. 공약 자체도 사기였지만 그 해명도 사기라는 이야기다.
의료민영화
그것뿐 아니다. 지난 1월 31일 송영길 인천시장이 인천 국제병원을 영리병원이 아니라 비영리 국제병원으로 짓겠다고 박근혜 당시 당선인에게 건의했다. 이에 박 당선인은 “국제병원에 대한 좋은 솔루션을 찾으신 것 같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인천 영리병원은 새 정권에서는 안 세워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약속과 신뢰의 정치인’께서 당선 뒤에 이렇게 이야기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역시 아니었다. 진영 장관이 이번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을 통해 영리병원을 “녹색기후기금 등 국제기구 유치, 외국인 투자 활성화 등을 감안, 송도지역에 시범적으로 설립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1백40대 국정과제에 나오는 말과 같다. 영리병원을 기어이 만들겠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의지다.
1백40대 국정과제를 보면 곳곳에 의료 민영화 공약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48번 항목의 “건강의 질을 높이는 보건의료서비스체계 구축” 항목에는 “맞춤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혁신형 건강플랫폼 모델 확산”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에는 “병의원, 공공기관, 기업체등 공공·민간을 아우르는 … 칸막이를 없애고 협업하는 혁신모형”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노인복지 항목에도 ‘스마트케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이 문구만 보면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다. 그런데 건강(생활)관리서비스를 설명한 복지부 웹사이트의 설명을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쉽다.(그림 참고) 간단히 말하면, 비영리병원을 영리병원으로 바꾸는 것은 국민들의 반대로 쉽지 않으니, ‘건강증진’과 ‘질환관리’라는 영역(그림 오른쪽)을 우선 떼어서 건강생활서비스기관이라는 이름의 영리기업에 맡겨 이것부터 영리화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건강관리서비스 영역에는 이미 SK, KT, LG, 삼성 등 재벌기업이 대거 진출해 있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헬스케어 산업을 강조하면서 이와 관련한 업종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SK, LG, 삼성, KT 등이 이른바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했고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삼성, SK, LG 재벌이 운영하는 ‘건강생활서비스’라는 기업이 지주회사가 되고, 이 아래에 각 재벌이 거느린 삼성생명, LIG 보험, 삼성, 현대병원, 여기에 스마트케어라는 이름으로 IT 업체까지 거느리는 ‘헬스케어’ 산업을 만들고 이를 돈벌이 시장으로 만들자는 것이 박근혜 정부와 한국 재벌들의 보건의료 미래 구상인 것이다.
진보의 목소리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 1백 퍼센트 보장, 기초노령연금 두 배, 국가장학금으로 등록금 부담 반으로 인하, 심지어 비정규직 차별 완화 등 민생과 복지 정책을 내걸고 당선했다. 그러나 이 공약은 진보정당의 공약을 말로만 베꼈지 실내용은 없는 꾀죄죄한 것이었고 이마저 모두 후퇴시켰다.
여기에 더해 박근혜 정부는 의료부분만 보더라도 공공병원 폐쇄 같은 직접적 복지 축소에 더해 지역적 영리병원 허용, 우회적인 의료민영화 정책을 진행하려 한다. 의료·복지 부문만 그런가? 다른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다. 철도, 가스 등 공공부문 민영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고 이명박 정권의 공기업 구조조정 지휘자였던 현오석씨가 지금 경제부총리 지명자다.
이 상황에서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목소리는 무엇이어야 할까? 일부의 이야기처럼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내세운 복지 공약만이라도 지키도록 해야 하는 것일까?
박근혜 정부는 이미 드러난 것처럼 그들의 협소한 복지 공약도 지킬 생각이 없다. 그리고 의료부문에서 보이는 것처럼 공공부문 민영화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또한 우회적으로 진행시킬 계획이다. 지금은 박근혜 정부를 도울 때가 아니라 그 실체를 밝히고 진보적 대안을 제시할 때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냉소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진보의 목소리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보인다.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만들어 나갈 몫은 여전히 진보와 사회운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