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속의 논쟁:
민영화가 민간의 자율성과 선택권을 늘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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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내에 ‘모든 민영화를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견해가 있다. 특정 부문은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낯설지 않다. 2002년 김대중 정부 당시 철도·발전·가스 민영화에 맞서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도 일부 NGO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흔쾌히 지지하지 않았다.
공기업들이 그동안 저지른 환경 파괴와 부패를 보면 민영화 반대는 기껏해야 공기업 관료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공기업 적자는 세금으로 메우는데 관료들의 무사안일주의와 과도한 보수 탓에 세금을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부 시절, 공기업 사장이나 이사직은 정권의 측근들이 낙하산으로 임명돼 이권을 누리는 자리였다.
일부 NGO가 보기에 ‘민영화 반대’는 현상 유지였고 그러다 보니 “일방적인 민영화 일정은 유보돼야 한다”는 어정쩡한 주장을 하기 일쑤였다.
이런 태도의 밑바탕에는 국가 관료들에게 집중된 권력을 ‘민간’이나 시민사회로 분산해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민영화는 대상과 방식의 문제일 뿐 권력 분산에 활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민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거나 권력을 나누려고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대기업의 손에 더 많은 권력을 쥐어 주려는 것이다. 정부가 운영하던 정유, 가스, 통신을 나눠 가진 것은 시민이 아니라 SK, GS, KT 같은 재벌들이다.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사회적 부를 공공 영역에서 사기업 영역으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민영화로 정부의 재정 지출이 준 적은 없다. 서비스가 민영화되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정부의 재정이 훨씬 덜 돌아갈 뿐이다.
대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정부의 돈이 사장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민자 발전이나 민자 철도 계획에 참여하는 기업들이나 연구소를 운영하는 기업들에 엄청난 보조금이 들어간다.
게다가 경쟁이 도입돼도 부유한 자들은 단지 돈뿐 아니라 가용 자산이 많아서 최고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반면, 보통 사람들은 최악의 서비스를 누리는 처지로 내몰릴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사유화에 맞서 공공성을 옹호한다. 지배자들은 국가가 서비스를 운영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서비스 운영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
지배자들은 경쟁과 자유시장을 밀어붙인다. 그렇게 하면 기업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는 중립적이지 않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누르는 계급 지배 도구다.
진정한 권력은 선출된 정부에 있지 않다. 진정한 권력을 가진 것은 부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람들은 적어도 의료 서비스를 망가뜨릴 정부를 선거에서 떨어뜨릴 수는 있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은 선출할 수도 없다. 지경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를 무산시킬 수는 있지만 재벌들의 이사회는 그렇게 하기가 훨씬 어렵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가 소유한 부분을 ‘민간’에 넘기면 소비자들이 자유와 선택권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복지를 영리 추구 기업의 손에 넘길 자유다. 이런 조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지배자들은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있고,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나면 평생 노동계급일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이 우리 삶의 모든 측면과 모든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아프면, 가족이 빚에 허덕일 것이다. 수천만 원 빚을 질 각오가 돼 있다면, 대학을 가겠다고 “선택”할 수도 있다.
이건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기업 이사 자리에 이력서를 넣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합격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그런 종류의 최고 엘리트 그룹에는 거의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
지배자들은 자유와 개인의 주체성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개인’은 부자 ‘개인’이다.
사회주의자는 집단적 자유를 지지한다. 우리의 공공서비스를 지킬 최고의 방법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이다.
노동자들의 행동에는 이런 서비스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잠재력 또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