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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앞에 놓인 시험대

민주노동당 앞에 놓인 시험대

정병호

총선 전까지만 해도 보수 언론들은 민주노동당을 의도적으로 외면해 왔다. 〈한겨레〉도 충분히 정당한 취급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순식간에 270만 명의 지지를 받은 제3당이 되자 더는 그럴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기업주들과 보수 언론, 기성 정치권이 단결해 민주노동당 견제를 시작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부유세, 고금리제한법, 파병철회 동의안, 비정규직 보호법 등 좌파적 정책에 시비를 걸고 있다.

가령 부유세의 경우 “현실성이 없다”(정세균), “자본의 이동 문제를 감안해야 한다”(정동영), “다양한 절세와 탈세 기법이 등장[할 것이다](자유기업원) 등 한 목소리로 공격하고 있다.

반대로 60퍼센트 이상의 국민들은 부유세 도입에 찬성한다. 또한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 의회 진출을 계기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열망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위기를 빌미로 지배계급의 공격이 강화됐다.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임금 삭감, 노동시간 연장, 복지 축소 때문에 노동 대중의 삶이 더욱 피폐해졌다.

민주노동당의 성장은 노동 대중이 이런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정책에는 노동 대중의 열망이 아로새겨져 있다.

사회복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GDP 대비 사회복지 예산 책정률이 OECD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국가가 교육·의료 등 사회복지 혜택을 무상 제공하겠다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큰 희망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서 재원을 확충한다는 부유세 정책은 계급 불평등이 심각한 우리 나라에서 꼭 필요하다.

고금리제한법과 신용불량자 구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임금 삭감과 해고 등에 시달리던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카드와 사채의 유혹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수익성에 눈먼 은행들의 카드 남발을 앞장서서 부추겼다. 이 때문에 현재 4백만 명의 신용 불량자가 양산됐고, 일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자살을 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놓은 민주노동당의 금융 정책은 빈곤의 책임을 개인이 짊어지게끔 했던 비정한 체제의 논리에 도전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보호법, 손해배상 가압류 금지 정책도 노동자들에게 인기 있는 요구다. 그 동안 노동자들은 비정규직화와 손배가압류로 인한 고통 때문에 몇몇 노동자들이 분신으로 저항할 만큼 극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로 올해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높은 기대감을 표현했다.

민주노동당은 ‘파병 철회’도 중요한 정책으로 내놓고 있다. 의원단은 당선 직후 연수에서 ‘이라크 파병 철회’를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이들이 의회 내에서 파병 철회를 강력히 추진한다면, 반전 운동에 커다란 자신감을 줄 것이다.

시험대

민주노동당의 정책들은 한편에서는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방어 심리를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기득권 세력들이 민주노동당을 길들이려는 목적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기업주 단체와 보수 언론들은 ‘성장이냐 분배냐’ 양자택일을 민주노동당에 강요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성장’은 기업 이윤의 원활한 확보를 의미한다. 민주노동당의 “극단적 분배 정책”은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여 성장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당시 권영길 후보가 말했듯이 “경제가 성장해도 국민이 여전히 가난한 것은 성장의 열매를 재벌과 부자들이 독점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나라는 “OECD 국가 중 지난 4년 간 노동생산성이 가장 높았지만 실질임금 상승률은 최하위를 기록했다.” 즉,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압력이 거세자, 아쉽게도 민주노동당은 때로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가령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고금리제한법의 경우 애초 법안보다 후퇴했다. 2001년 참여연대와 함께 이 법안을 마련할 때는 이자의 최고한도를 25퍼센트로 설정했다가 이번 총선 때는 40퍼센트로 변경했다. 40퍼센트 정도의 금리라면 이자 부담은 여전히 클 텐데도 말이다.

부유세 같은 조세를 통한 재분배 정책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므로,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다. 가령 제2차세계대전 직후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해진 영국의 경우, 재분배 정책을 추진한 1949년에도 상위층 10퍼센트는 조세를 낸 뒤에도 전체 소득의 27.1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부유세 같은 강력한 재분배 정책은 기업과 기득권 세력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리되면 민주노동당의 정책은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저항과 사보타주에 부딪힐 게 불보듯 뻔하다. ― 탈세, 자본 도피 위협 등.

이럴 때는 수세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물리칠 대중 투쟁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당은 의회를 투쟁을 건설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궁극적으로 대중 운동과 더욱 긴밀히 연관을 맺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이 지역에서 기층 운동과 연관맺을 지구당을 폐지하려는 시도에 대해 불복종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지난 5월 6일 중앙위원회에서 당직과 공직의 겸직을 금지한 당규가 통과된 것도 의회 중심주의를 내부에서 견제하려는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 줬다.

앞으로 민주노동당은 더 험난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재분배 정책은 계속 기득권 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적 불황의 시기에 지배계급이 쉽사리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자그마한 개량도 체제를 위협하는 강력한 투쟁을 통해서만 성취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