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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천의봉의 철탑 일기 ⑤:
“당당히 부당함을 알리며 싸워서 정규직이 되자”

현대차 비정규직 천의봉, 최병승 동지가 15만 4천 볼트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비와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목숨을 건 철탑 고공 농성을 1백80일이 넘게 이어가고 있고, 벌써 계절이 한번 바뀌고 있다. 다음은 천의봉 사무국장이 지난 4월에 쓴 일기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현대차 천의봉의 철탑 일기 ④: “행동하지 않으면 판결문은 종이 쪼가리 일 뿐 “”을 읽으시오.

4월 1일

4월의 첫째 날은 월요일로 출발한다. 그리고 오늘은 거짓말을 해도 되는 날 만우절이다. 이른 아침부터 만우절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최대한 현실적인 거짓말을 해보기로 했다. 철탑농성중이니 내려간다고 하면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지인 몇 사람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13시 30분에 내려간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몇몇 사람이 반응을 한 거다. 이제까지 투쟁만 했던 조합원들이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바쁜 일정을 보냈다는 게 지금 순진함에 묻어 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잠시 나마 웃음으로 짧은 시간을 보냈다.

‘정몽구가 10년 동안 불법으로 착취한 임금을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돌려주겠다’,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 하루 거짓말에 불과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소망일 것이고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말이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정상적인 가정을 이끌어 가려면 빨리 이 싸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라 어느 누구를 탓할 게 아니고 전부 이런 입장일 거라 생각한다.

한 가정의 진정한 아버지로서 그리고 부모 역할도 못하고 있다. 이런 게 오늘이 벌써 167일차다. 조금 있으면 6개월을 여기서 지내고 있는 거다. 그런데 회사는 아직 불법파견 인정은커녕 오히려 꼼수로 이 위기를 피해가기만 바쁘다.

지난주에 이후 투쟁의 결의를 다시 모으는 전체 조합원 체육대회가 있었다. 한 명의 땀방울이 이후 투쟁의 단결력 아닐까 싶다. 이렇게 해도 현장의 조직력은 쉽게 올라오지 않는다. 앞으로 지체할 시간이 없다. 따사로운 봄날이지만 우리는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4월 2일

낮까지만 하더라도 봄을 만끽하기 좋은 날씨였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하늘이 먹구름으로 인해 요상치 않은 날씨다 싶었는데 웬걸 천둥이 치고 잠시 후에 소나기까지 내렸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세게 분다. 온 사방이 분홍 벚꽃으로 물들어 있지만 이 비와 바람이 지나고 나면 이제 꽃은 눈꽃으로 떨어질 거고 길거리 가로수에는 파란 잎이 돋아날 거다. 어차피 내가 못 볼 거면 빨리 떨어지라고 혼자만의 짓궂은 심술을 부려본다.

오후에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이런 기사를 봤다. 6주간의 교육이 끝난 신입사원들이 이제 현장에 배치될 것이다. 언제부터 신입사원 명찰 달아주고 했던 게 뉴스에 나올만한 기사인지... 혈기왕성하게 싸웠던 90년대의 노동자들이 이제는 평균 나이대가 50을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다. 꾸준한 학습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줘야 하지만 자본은 철저한 계산방식으로 세대 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현대차는 8년간 단협을 어기면서까지 신입사원 충원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규직 신입사원 자리에는 또 다른 비정규직들이 채워졌었다. 철탑농성이 시작되고 불법파견 무마용으로 무자비하게 신규채용을 한 것이다. 그것도 사내하청에서만 600명을 뽑았는데 이번에 200명이 교육을 끝으로 현장에 투입된다. 이 사람들도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하는데 스스로 자기 권리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마냥 좋을 리가 있겠는가. 어찌 보면 진짜 얄밉다. 현장에 배치되면서 옆에서 싸우고 있는 비정규직 동지들한테 전혀 미안함도 없이 오히려 힘주고 다닌다는 불편한 진실... 앞으로 현대차지부 앞날이 걱정되는 조합원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원인 제공을 한 게 신규채용으로 합격한 사람이 아니고 정몽구다.

지금 남아서 싸우는 조합원들은 비겁하게 정규직이 되는 게 아니고 당당히 우리 부당함을 외치면서 오늘도 머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참 정규직이 뭘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하루다. 의리를 지키는 게 그리 힘든가 보다. 없이 살아도 사나이 의리 만큼은 끝까지 지켜야겠다. 언젠가 정규직이 될 거고 그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는데 비겁하게 하루를 살지 말자.

이 기사를 읽은 후에 “현대차 천의봉의 철탑 일기 ⑥: “물방울이 바위를 못 뚫을 거 같으냐””를 읽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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