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개폐’가 아니라 폐지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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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개폐’가 아니라 폐지여야
강동훈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국가보안법의 ‘개폐’(개정과 폐지)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 4월 17∼18일 국회의원 당선자 2백99명 가운데 2백69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국가보안법 개정에 58.7퍼센트가, 폐지에는 29퍼센트가 동의했다. 〈조선일보〉의 조사에선 한나라당 당선자의 90퍼센트가 개정에 찬성했다.
이것은 민주적 의식이 확산된 것과, 남북한 사이에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급증하면서 법과 현실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증가한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까지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17대 국회 구성원들의 압도적 다수가 보안법 개정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상당수는 폐지의 필요성까지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 문제는 더 이상 미루거나 피해가기 어려운 현안으로 등장할 것이 확실하다.”(〈조선일보〉 5월 1일치 사설).
이들의 의도는, 사회적 여론에 밀려 어차피 논의해야 할 것이라면 폐지보다는 개정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논의를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니라 개정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물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 개정조차도 열의가 없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국가보안법 문제를 제외했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지한다는 김근태와 신기남도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며 한 발 빼고 있다.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도 개정 작업 일정 등에 대한 구체적 구상이 없다.
더 큰 문제는 국가보안법이 개정되거나 대체 입법이 되더라도 여전히 ‘사상탄압법’은 남아 있게 된다는 점이다.
보수 정당들과 〈조·중·동〉 등 보수 언론들은 국가보안법 제2조의 반국가단체 규정에서 ‘정부 참칭’ 대목을 삭제하는 것, 그리고 그 동안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제7조의 찬양·고무 조항이나 제10조의 불고지 규정을 개정 내용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김대중이 주장했던 ‘민주질서수호법’과 비슷한 내용인데, 북한과 연계가 없어도 남한의 ‘민주질서’에 반대하는 주장을 하면 반국가단체 규정 등으로 처벌하겠다는 셈이다.
검찰이 반국가단체로 기소했지만 법원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영남위원회 사건’에서 보듯이 반국가단체와 이적단체는 법리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반국가단체 규정만 남는 국가보안법 개정이나 ‘민주질서수호법’ 등의 대체 입법도 모두 사상을 탄압하는 법이 갖는 자의성을 그대로 가질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의 개정이 아니라 완전한 폐지를 주장해야 한다. 사상의 자유는 완전히 보장돼야지 어중간한 보장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