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류 정치:
시작도 전에 뒷걸음질치는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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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우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과반수 의석을 얻었고 5월 14일 헌재의 탄핵소추 기각 평결로 노무현이 돌아왔다. 이전에 노무현과 여당이 개혁의 실종을 보수 야당의 발목잡기 탓으로 돌려 왔기 때문에 〈한겨레〉나 〈오마이뉴스〉 같은 언론은 이제부터 “고강도 개혁”, “개혁 드라이브”가 펼쳐질 것이라고들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복귀 일주일 만에 벌써 개혁 의지는 꺾이고 있다.
노무현은 복귀 다음 날인 5월 15일에 발표한 담화문에서 “이해집단의 갈등이나 목소리에 매몰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꾼들의 “목소리에 매몰”돼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는 없던 일이 됐다.
재벌들의 “목소리에 매몰”돼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은 애초 10만 명 정규직화에서 다시 3만 명 정규직화로, 정규직화에서 다시 처우개선으로 거듭 후퇴했다. 노동부 장관 김대환은 이런 후퇴를 “실사구시적 접근”이라며 ‘실용주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보여 주었다.
5월 15일 담화문에서 노무현은 “인기가 떨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 꼭 필요한 일이라면 꿋꿋하게 원칙을 지키면서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꿋꿋하게
며칠 후 노무현은 조지 부시와의 전화 통화에서 “[추가 파병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고 국내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고 보고함으로써 ‘꿋꿋하게 해 나갈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드러냈다.
노동자들의 땀이 밴 돈을 주식투기에 갖다 바치는 연기금 주식투자 허용, 버스·지하철 등 공공요금 대폭 인상, 법정공휴일 축소 등도 노무현이 ‘인기가 떨어져도 꿋꿋하게 해 나가는 꼭 필요한 일'들이다.
노무현이 이렇게 앞장서자 열우당 내에서도 개혁과 실용, 성장을 둘러싼 혼란이 정리되고 있다. 천정배는 “안정”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신기남은 “포용정책”을 말하고 있다. “노무현의 동업자” 이광재는 “파이가 커야 나눠지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파병도 “재검토”에서 “불가피”로 바뀌고 있다.
가다 서다 저강도 개혁
노무현이 “상생과 화합”을 말하는 가운데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노무현·이회창·박근혜·재벌총수들에게 모두 면죄부를 주며 용두사미로 마무리됐다. 검찰 수사를 피해 외국으로 도망갔던 재벌총수들은 5월 25일 노무현과의 회동을 위해 줄줄이 귀국했다. 노무현은 재벌들을 만나 “규제를 과감히 풀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언론 개혁한답시고 그렇게 뜸들이던 공정거래위는 5월 25일 “눈가리고 아웅하는 생색내기”(전국언론노동조합)식 ‘신문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이처럼 어디서도 고강도 ‘개혁 드라이브'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몇 차례나 단식투쟁을 벌인 보호감호 재소자들의 투쟁에 밀려 법무부가 사회보호법을 폐지하는 대신 강력범은 여전히 보호감호한다는 대체입법을 내놓은 것에서 ‘저강도'의 ‘가다 서다 개혁'이 느껴질 뿐이다.
이것은 지난 1년 간 단지 보수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노무현 정부가 개혁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노무현 자신이 보수 언론과 대재벌, 군대·검찰·경찰·법원 등에 포진해 있는 권력자들과 타협해 왔다.
물론 노무현의 당은 심지어 피억압자 운동 일부 지도자들에까지 기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수장으로서 노무현은 자신의 기반을 배신하고 지배계급의 요구를 받아들여 왔다.
그리고 한국의 지배계급은 주가폭락으로 3주 만에 90조 원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이런 경제위기 시기에 노동자들에게 ‘민주 개혁'을 순순히 허용할 생각이 없다.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시장 개혁'만을 강행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이 복귀한 후 처음 열린 5월 18일 국무회의가 끝나자마자 재경부 장관 이헌재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겠다”, “불법 노사분규에 대해서 엄정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시장개혁 드라이브' 과정에서 부딪힐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노무현은 청와대에 시민사회수석을 신설하고 노동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을 임명했고 민주노총을 노사정위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5월 25일 재벌들과 만나서 노무현은 “사회적 합의 … 이게 성립되면 대단히 성공적이다. 함께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사회 양극화와 특히 노동자들의 저항 때문에 노무현의 이러한 책략은 성공하기가 그다지 쉽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