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새 원내대표로 김덕룡이 선출됐다. 김덕룡은 “박대표
김덕룡은 박정희 정권 때 반독재 투쟁을 벌이다 세 차례나 투옥됐다. 이후 김덕룡은 김영삼 밑에서 야당 활동을 했다. 그러나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야합한 3당합당 이후 김덕룡은 독재정권의 후예들과 “큰 틀에서 같은 길을 걸어 왔다.”
그 길은 부패와 지역주의·냉전 선동으로 얼룩진 길이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한보게이트'가 불거졌을 때 김덕룡은 ‘정태수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고 측근이 5천만 원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1995년 지방선거 때 민자당 사무총장 겸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김덕룡은 안기부 예산 257억 원을 선거 자금으로 이용한 ‘안풍'에 깊숙이 연루돼 지금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전북 출신인 김덕룡은 영남 지역주의에 기반한 민자당
민자당 사무총장이던 1995년 “전북은 호남의 2중대쯤으로 전락했다”며 호남 분열 선동을 했던 김덕룡은 정권교체로 야당이 되자 1998년 4·2 재보선 때 “현 정권이 국가 주요직에서 경상도 사람들의 씨를 말리고 있다”고 선동했다.
1997년 신한국당
그러다 김덕룡이 다시 떠오른 것은 1998년 통일부 국정감사 때 “북한 평북 금창리에 지하 핵시설이 존재한다”며 냉전 선동에 불을 붙였을 때였다. 미국 클린턴 정부와 조·중·동은 즉각 이를 이용해 북한을 압박하며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켰다. 나중에 금창리는 텅 빈 동굴로 밝혀졌다.
2002년 대선 패배 후 파병 찬성, FTA 찬성, 탄핵안 찬성 등 꾸준히 한나라당에서 우익들과 ‘같은 길'을 걸어 온 김덕룡은 원내대표가 된 후 민주노동당을 찾아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동의 경직성'이라는 장애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독재자의 딸과 한때 그 독재자에 저항했던 자가 이제 당 대표와 원내대표로 완전히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는 121명의 우파적인 한나라당 의원들 중 한 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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