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논평:
비틀거리는 ‘아베노믹스’와 세계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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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가 점차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고 주류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최근 국제 증시가 요동친 것은 위기가 전혀 해소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고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전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한동안 금융시장에서 2008년 위기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때 안 좋았던 과거’였다는 식이었다.
5월 21일 미국 증시는 또 한 번 최고치를 갱신했다. 그런데 이틀 뒤에, 금융업계 표현을 빌리자면 “조정국면을 거쳤다.”
일본 닛케이 지수는 9.2퍼센트 떨어졌는데, 2011년 3월 [핵발전소 폭발을 일으킨]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최대 낙폭이다. 다른 나라의 주요 증시도 함께 하락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2008~09년 금융 폭락 이후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주요 나라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각국 정부는 경기를 끌어내리는 압력에 대처하려고 은행을 구제하고 재정 지출을 늘렸다. 이 덕분에 경제와 금융시장이 파산하는 것은 막았지만 그 대신 정부 부채가 늘었다.
엄연히 민간부문을 정부가 구제하느라 생긴 일이었는데도, 저들은 “국가 부채 위기”라고 불렀다. 이를 구실 삼아 공공지출을 삭감하며 신자유주의 공세를 강화했다.
영국 보수당·자유당 정부가 가장 먼저 여기에 나섰고, 유로존과 미국이 차례로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긴축을 시행했다 해서 정부가 경제에서 발을 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중앙은행을 통해 개입하며 경제가 또다시 침체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고 금융시장에 돈을 마구 풀었다.
미국과 영국은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국채와 회사채를 사들였다. 유럽중앙은행은 좀 더 조심스러웠고 간접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은행들에 돈을 밀어넣는다는 점에서 효과는 같았다.
이렇게 사실상 돈을 찍어 낸 덕분에 증시는 치솟았다. 일본 우파 민족주의자 아베 신조가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승리한 뒤에 증시 상승은 더 탄력을 받았다.
아베는 중앙은행장을 새로 임명하며 ‘아베노믹스’를 펼쳤는데, 막대한 돈을 푸는 것이 골자였다. 심지어 미국보다도 더 많은 돈을 풀었다. 목적은 일본이 지난 20년간 면치 못한 경기 침체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좀비
영국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이 “통화 행동주의”라고 부른 이런 정책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그런 정책은 마냥 지속할 수 없고 언젠가 멈춰야 하는 비상 대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정부가 뿌리는 값싼 돈에 중독돼 버렸다. 문제는 단지 금융시장만 중독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중앙은행은 “좀비 회사”들이 문제라고 지목했다. 이것들은 금리가 낮은 덕분에, 그리고 은행이 손실을 우려해 이것들의 파산을 원치 않기 때문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한다.
많은 평론가들은 증시가 또 떨어진 것이 미국에서 중앙은행 구실을 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 버냉키가 5월 22일 기자회견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본다.
버냉키는 연준이 “몇 달 안에” 채권 매입[돈을 푸는 것]을 “서서히 줄여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연준 회의록을 보면 정부 관계자가 6월부터 이런 식으로 양적완화를 거둬들이길 원한다고 나와 있다.
정부가 더는 돈을 대주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시장은 겁에 질렸다. 바로 이 점이 “통화 행동주의”가 갖는 둘째 문제를 보여 준다. 경제 회복은 전혀 탄탄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미국 경제는 이전보다는 좀 더 견실히 성장했다. 애초에 버냉키가 양적완화를 줄이겠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 경제는 늪에 빠져 허우적 댄다. 최근 구매자관리지수(PMI)* 발표 결과를 보면 유럽 경제는 수축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산업 동력인 중국의 제조업 부문 구매자관리지수를 보면, 중국 경제 역시 수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지배자들도 버냉키와 비슷한 딜레마를 겪고 있다.
중국은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해 2008~09년 경기 침체에서 빠져나왔지만 동시에 거대한 자산 투기 거품이 생겼다. 중국 신임 총리 리커창은 자산 가격 상승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값싼 신용을 시장에 공급하지 않으면 본격적인 경기 후퇴가 올 수 있다. 금융위기가 터진 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는 허우적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