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기사] 우리 모두를 위한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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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모내기를 시작하는 오월에 한전은 공사를 재개했다. 농사 걱정에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새벽부터 할머니는 철탑 공사장이 있는 산에 올라갈 준비를 한다. 몸이 땡볕에 말라버리지 않도록 밭일 나갈 때 쓰는 천 두른 모자, 송전탑 반대 구호가 적힌 조끼, 점심 도시락과 산길에 노구를 지탱해 줄, 나무 꺾어 만든 지팡이가 준비물이다.
산길이 시작하는 곳에서는 등산복을 잘 차려 입은 한전 직원들이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산을 올라가는 한전 직원들은 처음에는 할머니들을 뒤따르더니 이내 따라잡고 만다. 한전 직원들이 지나간 뒤에도 할머니들은 몇 번은 쉬어 쉬어 철탑 공사장에 도착했다.
아침 일과 시간이 되자 한전 직원들이 주민들을 둘러싼다. 한전 현장 담당자라는 사람이 확성기를 들고서 불법 행위 중단하라며 엄포를 놓는다. 항상 듣던 소리다. 그러나 그런 엄포 따위는 할머니들의 긴 삶 속에서는 이미 없어진 듯 태연하다. 이윽고 현장 담당자가 한전 직원들에게 할머니 옆에 앉으라는 지시를 한다. 할머니들을 설득해 공사장 밖으로 보내려는 심산이다.
“어머님 여기 많이 덥지예? 여긴 너무 더우니 저기 그늘 가서 쉬시소.”
“할머니 제 애 좀 맡아 주실랍니꺼? 그러면 애보느라 바쁘셔서 여기 안 오실텐데예.”
말을 섞어 가며 할머니들의 ‘적개심’을 달래보느라 애쓴다. 일부는 전에 열심히 싸웠던 할머니 이름과 동네가 어디냐고 넌지시 캐묻기도 한다.
이는 차라리 평화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기자나 인권위가 없는 공사 지역은 경찰이 주민들을 강제로 연행한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주름살 가득한 알몸을 드러내면서까지 저항해 봤지만 결국 경찰은 포대에 씌워서 끌어내 버렸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바람은 단순하다. “고생해서 마련한 가산을 지켜 달라는 조상의 유언을 못 지킬까 봐, 후손들이 고향에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변할까 봐 걱정이 되어 공사현장을 지키고 있다.”는 한 할머니의 울먹이는 이야기를 들어보라. 어디에 ‘님비’가, 어디에 외부 세력들의 세뇌가 있단 말인가?
할머니들은 경찰과 한전 직원들을 물리치고 공사를 막고 있음을 큰 소리로 자랑하다가도, 이웃 주민들이 지지 방문을 왔을 때는 서로 껴안고 펑펑 울어 버리고야 만다. 함께 싸우는 다른 마을 주민들을 보자 한 순간에 설움이 터져 버린 것이다.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자기 땅을 지키겠다는 그 소신을 지키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말이다.
5월 29일에는 송전탑 건설을 40일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철탑 현장을 지키는 주민들은 한전이 전향적으로 송전탑 건설을 중지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마을 주민들은 한전이 전국에서 비가 오니 공사를 강행하지 않겠다 했을 때도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며 공사 현장을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며칠 전 한전 부사장이 사표를 썼다. 핵발전소 수출을 위해 송전탑 건설을 완료해야 한다는 발언이 경솔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수라기보다는 솔직하게 한전의 속내를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핵발전을 위해서는 어렵게 살아온 힘없는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송전탑 건설 현장을 지키며 투쟁하는 주민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