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위기와 신흥국들로 번져가는 저항:
터키와 브라질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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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브라질, 이집트 …. 세계 곳곳에서 저항이 번지고 있다. 근래의 특징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경제의 견인차라고 치켜세워지던 신흥국에서 저항이 터져 나온다는 점이다.
브라질은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심 국가 중 하나였다. 터키도 2000년대에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포스트 브릭스’라 불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번 저항을 “중산층의 반란”으로 묘사한다. “이제 막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된 신흥국의 중산층”이 “더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경향신문〉)
그러나 이 나라들에서는 경제성장 속에 자본주의의 모순이 커져 왔다.
터키의 불평등 지수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40이 넘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다. 2003~10년 경제는 평균 5.3퍼센트씩 성장했지만 실업률은 오히려 두 배로 늘었다.
브라질도 백만장자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인구의 10분의 1에 가까운 1천6백만 명은 하루 1달러로 살아야 한다.
게다가 최근 이 나라들의 경제는 성장률이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2010~11년 8퍼센트 이상 성장하던 터키 경제는 지난해 성장률이 2.2퍼센트로 추락했다. 브라질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0.9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는 오르고 있다.
터키, 브라질뿐 아니라 최근 중국, 인도 등도 성장률이 급속히 둔화했다. 2008년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가 남부 유럽 정부의 재정 위기 속에 다시 격화하더니, 신흥국들로 불똥이 튀기 시작한 것이다.
신흥국들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양적 완화’ 등으로 쏟아진 눈먼 돈들이 흘러들며 호황을 누려 왔다. 외채를 빌려서 거품을 부양하고, 기업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썼다. 그러나 실물 경제의 이윤율이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정책들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눈먼 돈
특히 불어난 외채는 이 나라들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터키는 단기 외채가 외환 보유액의 1백30퍼센트가 넘을 정도로 많다. 브라질도 순외채가 외환보유액의 갑절에 달한다. 특히 중국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원자재를 수출하는 브라질의 경상수지 적자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중단하고 금리를 조금씩 올릴 경우 본격적으로 외환위기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거품을 떠받치던 돈들이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흥국 정부들은 재정적자 규모를 줄이고 기업들의 수익성을 보장해 주기 위한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공원을 없애고 쇼핑몰을 지어 건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터키 정부. 월드컵 유치를 위해 막대한 돈을 쓰면서 버스비를 인상해 재정 위기를 막겠다는 브라질 지배층. 어디서 많이 보던 것 아닌가?
4대강을 파헤치며 건설업자를 배 불리고, 지방정부 재정이 어렵다며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는 한국 지배자들의 태도와 정말이지 닮았다. 최루액과 물대포 등을 쏘며 폭력적으로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모습까지 꼭 같다.
따라서 최근 터져 나온 신흥국에서의 저항은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사이의 갈등도 아니고, ‘먹고살 만한 중산층’의 투쟁도 아니다. 이 저항의 근원에는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과 계급 갈등이 존재한다.
이 갈등은 단지 한두 나라의 일이 아니다. 끝나지 않고 더 깊어가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 곳곳에서 비슷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금 터키의 저항 운동은 정부의 폭력적인 탄압에 밀려 다소 주춤한 듯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브라질의 저항 운동은 월드컵에 돈을 쓰지 말고 교육과 의료에 쓰라고 요구하는 노동자 파업으로 이어졌다.
한국 지배자들 안에서는 ‘터키와 브라질이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하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이런 투쟁이 얼마나 전진하느냐에 따라 경제 위기에도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 들의 삶을 지킬 수 있다. 이런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운동으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