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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논평:
디트로이트 파산이 강성노조ㆍ과잉복지 때문이라는 거짓말

한때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 도시였던 디트로이트가 파산을 신청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미국 정부가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돈은 모두 은행·기업을 구하는 데 쓰였을 뿐 노동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보수 언론은 ‘강성노조’와 ‘과잉복지’가 문제였다고 하지만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떠넘기기 위한 아전인수일 뿐이다. 디트로이트 파산의 진정한 배경을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설명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디트로이트,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는 앤 조르가카스와 마빈 설킨이 쓴 거대한 산업도시에서 벌어지는 위대한 노동계급 반란을 서술한 책이다.

그 반란은 1967년 운동의 상승 국면에서 벌어졌다. 이 책의 제목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죽은 노동자들에 관한 조 카터의 노래 ‘작업반장님, 일은 하겠지만 죽고 싶지는 않아요’에서 따왔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급진화가 절정에 달한 가운데 작업장 착취에 맞선 투쟁과 흑인 권리를 위한 투쟁은 서로 긴밀히 연관됐다는 것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디트로이트가 7월 셋째 주 파산을 신청했을 때도 그 배경에는 인종과 계급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훨씬 파괴적으로 그랬다. 지금 디트로이트는 1백85억 달러에 달하는 빚이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충격적인 일이다. 세계 최대의 미국 자동자 산업의 중심부였던 디트로이트는 1960년만 해도 1인당 소득이 미국에서 가장 높았던 도시다.

오늘날 디트로이트 부자들이 부를 과시하려고 만든 고층빌딩과 별장들은 여기저기 판자로 땜질한 흉물이 됐다.

지역사회가 풍비박산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화씨 9·11〉을 보면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경제적 전쟁이 이라크의 도시들만큼이나 이 도시를 황폐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두 가지 과정이 디트로이트를 바꿔 놨다. 첫째는 백인들이 떠났다는 것이다. 1950년대 2백만 명으로 절정을 이뤘던 디트로이트 인구는 오늘날 70만 명도 안 된다.

흑인과 백인 민병대가 서로 충돌한 1967년 반란 이후 부유한 백인 가정은 교외로 빠져나갔다. 그래서 세수가 줄었다.

그 결과 공공서비스가 악화하고, 그러자 다시 사람들이 떠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디트로이트를 바꾼 또 다른 과정은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일어난 구조조정이다. 디트로이트 파산을 미국 자본주의가 쇠락하는 증거로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 지배계급은 지극히 강력하고 부유하며, 자신들의 이윤과 특권을 지키는 데 사용할 부가 엄청나게 많다.

1970년대 중엽 뉴욕 시가 파산할 뻔했다. 이후 은행의 관장하에 도시가 구조조정에 들어갔는데, 그 결과는 혹독한 신자유주의 실험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뉴욕 시가 1980년대 영국 대처 정부가 갈 길을 보여 줬다고 여긴다.

경쟁

디트로이트에 있는 ‘빅 3’(GM, 포드, 크라이슬러)는 1980년대 일본 경쟁자들한테 효율성 측면에서 밀려 위기를 겪었다.

이에 대응하려고 그들은 미국 중서부 핵심 도시에서 생산을 줄이고 임금이 싸고 노동조합이 약한 미국 남부에 공장을 지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가 GM과 크라이슬러를 부도 처리하자 위기가 더 심화했다.

전미자동차노동조합은 혼란에 빠지고 협박을 못 이겨 노동조건 개악을 받아들였는데 그 결과 공장이 폐쇄되고 새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더 낮은 임금과 열악한 조건에서 일해야 했다.

정부가 이렇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결과 GM은 빠르게 수익성을 회복했다.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관련 일자리는 1990년 30만 개에서 2013년 15만 개로 줄었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나쁜 디트로이트 경제가 더 나빠졌다.

오래전 뉴욕시처럼, 디트로이트에서도 파산을 이유로 공공서비스와 도시 차원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줄이려 할 것이다.

앞에 설명했듯이, 미국 자본주의 전체가 디트로이트와 같은 운명을 겪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산은 카터가 노래로 말하고자 했던 바를 더 극명히 보여 준다.

미국의 자동차 대기업들은 디트로이트를 짓고 거기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력뿐 아니라 그들의 생명까지도 집어 삼켰다.

그러나 자본은 이제 떠났다. 자본은 더는 디트로이트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필요치 않거나 적어도 과거만큼 많이 필요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도시를 버린 것이다.

트레이번 마틴 사건이 보여 줬듯이,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역시 여전히 횡행한다. 비록 말로는 ‘인종차별이 끝난 사회’라고 하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흑인들이 가장 고통받을 것이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든 다른 곳이든 계급 착취와 인종차별에 맞서 다시금 새로운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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