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깊은 빡침’이라는 말이 있다. ‘멘붕’(멘탈붕괴)을 넘어 극심한 좌절감과 허탈감으로 격한 분노를 느낀다는 뜻이다. 최근의 한국 정치 상황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말 그대로 ‘깊은 빡침’을 떨치기 어렵다.
지난해 대선 중에 불거진 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국정원의 대화록 무단 공개, 대화록 분실에 이어 급기야 증인 선서를 하지 않는 국정조사에 이르렀다.
이를 바라 보는 국민들은 이제 허탈함을 넘어 실소를 지을 힘마저 잃은 채 답답해 하고 있다. 이는 마치 문구점에서 연필을 훔친 아이에게 ‘연필 훔쳤지?’ 하고 묻자 대뜸 어제 문구점 가게 아저씨가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는 걸 보았다는 엉뚱한 덮어씌우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삼척동자가 봐도 이는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논쟁의 핵심에서 지우려는 물타기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상당히 높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졌을지 모른다는 추정으로 이어지게 한다.
국정원의 개혁을 바라는 시국선언이 각계각층에서 이어지고 있고, 점점 더 많은 국민들이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은 참으로 의아하다. 철저한 진상 조사, 혹은 국정원 개혁 등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NLL 대화록 문건 분실에 대한 언급으로 물타기에 힘을 실어주는 태도마저 보이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이러한 행동을 보고 반문할 것이다. ‘스스로 당당하다면 왜 직접 나서서 신속히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까?’
누가 봐도 명백한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 문제가 있었다면 그 문제 당사자에 대한 공정한 처벌, 국정원 개혁과 재발 방지. 이런 상식적 차원의 요구마저 묵살되고 물타기와 시간끌기로 버틴다면 국민들의 ‘멘붕’은 ‘깊은 빡침’이 돼 현정권에 더 큰 심판을 하게 될 것이다.
이번 국정조사로 수많은 국민들은 더는 가만두고 볼 수 없음을 느꼈을 것이다. 위증을 하겠다는 의지 표명과도 같은 증인선서 거부, 권은희 과장을 향한 색깔론, 가림막 뒤로 부채를 든 채 정해진 대본을 읽는 국정원 직원까지. 이제 국민들이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랐다. 꼬인 실타래를 나서서 풀어야 하는 것은 문제 당사자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이 문제를 밝혀내고 해결하기를 거듭 촉구한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