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촛불집회 리플릿:
마녀사냥에 함께 맞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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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노동자연대다함께가 2013년 9월 13일 발표한 리플릿에 실린 글이다.
박근혜 정권과 국정원이 일으킨 마녀사냥의 광기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구속된 이후에도 곳곳에서 기가 막힌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 영화도 우파 단체의 협박 속에 상영이 중단됐고, 우파는 ‘학생인권조례도 내란음모와 관련 있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국정원은 ‘공무원과 교사도 내란음모 모임에 참석했다’고 흘리며 마녀사냥 확대 시도를 하고 있다.
노동자연대다함께는 그동안 우파들과는 정반대의 혁명적 관점에서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비판해 왔다. 예컨대, 우리는 이 동지들이 민주당과의 민중전선적(계급동맹적) ‘야권연대’를 우선해 계급투쟁에 끼친 해악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마녀사냥에 침묵하는 것으로 연결될 이유는 하나도 없다. 투쟁 노선의 차이는 토론하고 실천에서 입증할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온갖 불법과 부패, 비리의 몸통인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은 진보당을 뭐라 할 자격도 없다.
특히 바로 얼마 전 ‘화교남매간첩사건’에서도 국정원은 여동생에게 오빠를 밀고하라며 “발로 다리를 차고 … 머리를 벽에 찧었”던 자들이다.
조중동, 종편은 온종일 “총기”, “파괴”, “살상” 등을 들먹이며 공포를 조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님 말고’식 황당무계한 마녀사냥이다.
(국정원도 ‘한국일보에 준 적 없다’는 의심스런) 녹취록에 따르더라도 이석기 의원 등은 단지 토론을 했을 뿐, 내란의 구체적 계획도, 실행 능력도 없었다. 국정원도 일명 ‘RO’가 언제 결성됐는지, 강령·규약·조직 체계가 무엇인지 하나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법률전문가들도 ‘내란음모는 기소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국정원은 수사 열흘이 넘도록 별 다른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검찰조차 노골적으로 ‘사실도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너무 많다’며 국정원에 짜증을 내고 있다.
무엇보다 진보당이 탄압받는 진정한 이유는 ‘내란을 음모’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워 왔다는 데 있다.
이번 탄압에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유리한 입지를 만들어 두려는 속셈이 보인다. 나아가 이 마녀사냥은 여전히 계속되는 세계경제 위기와 동아시아의 긴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파들은 똘똘 뭉쳐서 강성 우파 정권을 만들었고, 이 정권은 반동적 방식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따라서 마녀사냥은 하반기에 박근혜가 밀어붙일 경제 위기 고통전가의 디딤돌이다.
박근혜는 하반기 목표를 ‘경제활성화’로 내걸고 재벌 퍼 주기, 노동자 쥐어짜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카드를 꺼낸 날, 박근혜는 10대 재벌 총수를 만나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철도 민영화뿐 아니라 국민연금 개악, 전기요금 인상, 무상보육 후퇴, 공무원 임금 동결 등도 야금야금 추진되고 있다. 박근혜는 사회 분위기를 냉각시켜 이런 개악들을 일사천리로 추진하려 한다.
앞서 이승만,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에도 조봉암, 인혁당, 민청학련, 남민전 등 수많은 공안 사건과 각종 간첩단 사건을 날조해 통치에 이용했다.
박근혜는 심지어 33년 만에 ‘내란음모’라는 낡은 무기를 꺼냈다. 이 더러운 악법은 사상과 주장 자체를 처벌한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과 마찬가지로 악랄할 뿐 아니라 그것을 능가한다. 이석기 의원 등은 지금 끔찍하게도 비공개 토론에서 한 말까지 죄악시되고 있다.
이런 부당한 탄압에 우리가 침묵한다면 마녀사냥의 대상은 계속 확대될 수 있다. ‘나는 이석기와 생각이 다르니까’, ‘나는 경기동부가 아니니까’ 하며 망설일 때가 아니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생긴 진보 내부 분열·갈등의 골을 더욱 벌리는 게 저들이 노리는 바다.
박근혜 손 잡으며 촛불 뒤통수 치는 민주당
이미 민주당과 정의당까지 체포동의안을 찬성한 것에 기세등등해진 새누리당은 ‘이석기의 국회 진출을 도왔다’며 문재인까지 비난하고 나섰다. 국정원은 반값등록금 운동에 앞장선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활동가들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박근혜가 제안한 3자 회담을 받아들이며 역시나 또 우리의 뒤통수를 쳤다. 틈만 나면 촛불을 끄고 박근혜의 손을 잡을 기회만 노리더니 말이다.
이것은 민주당 뒤꽁무니를 쫓으면 안 된다고 했던 우리의 경고가 옳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국정원 규탄 시국회의’의 친민주당 NGO와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민주당을 추수하며 운동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또 마녀사냥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진보당이 시국회의에 적극적인 방어를 호소하지 않는 것도 아쉽다.
촛불을 든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 나와 다르고 잘못된 사상이더라도 그 자유는 옹호돼야 한다.
시국회의는 국정원이 반성은커녕 마녀사냥을 통해 반격하려는 것을 막아야 한다. 또 박근혜가 마녀사냥을 통해 추진하려는 온갖 반동적 정책에도 함께 맞서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조차 못 지켜서는 안 된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 ‘2중대’ 구실을 했다. 진보정당인 정의당도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 대표 김한길은 “사실이라면 충격”이라며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들끼리 토론한 것만으로 수사를 받는 것 자체가 부당한 일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 가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검찰이 과연 공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힐 수 있는가? 국정원·검찰은 전혀 중립적이고 공정한 기관이 아니다. 이는 국정원이 지난 대선 때 저지른 범죄만 봐도 알 수 있다. ‘떡검’, ‘섹검’ 비난을 받아 온 검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국정원의 매카시즘 수사에 협조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포기하는 민주당의 한심한 태도는 친자본주의 정치세력의 한계를 보여 준다.
국정원과 통합진보당, 둘 다 문제라는 양비론도 많다. ‘국정원과 통합진보당은 적대적 공생 관계’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잡아 가두는 자와 끌려가 갇히는 자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국정원은 직원 1만여 명에, 예산 1조 원을 쓰고, 불법 도감청과 사찰을 해 온 억압 기구다. 이런 무소불위의 국정원과 기층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진보정당이 서로 돕고 있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자유민주주의적 기본권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 지도부도 ‘우리는 진보당과 다르다’며 마녀사냥에 타협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헌법을 부정하는 진보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노회찬 전 대표는 “혁명론과 같은 극단주의는 넘어서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인정하는 사상만 허용하고 체제를 변혁하려는 사상의 자유를 부인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도 못 된다. 자유민주적 기본권조차 못 지키는 게 진보의 자세인가.
진보는 헌법이 아니라 이 사회의 근본 분단선인 계급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막아 내려면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사상과 결사의 자유를 옹호해야 한다.
기성 언론 ─ 마녀사냥에 물 만난 물고기
국정원 대선 개입과 촛불집회를 보도조차 않던 기성 언론들이 마녀사냥 속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온갖 왜곡과 부풀리기 기사들을 쏟아 내고 있다. 거의 국정원 홍보 찌라시 수준이다.
가장 신난 것은 조중동과 종편이다. 이들은 심지어 이석기 의원이 국정원에 강제로 끌려가면서 당원들에게 손을 흔든 것도 ‘북한식 인사법’이라고 비난한다. 나치 선전장관이던 괴벨스가 “거짓말은 엄청 크게 해야 성공한다”고 말한 게 생각날 지경이다.
친민주당 자유주의 언론들도 한계를 드러냈다. 〈경향신문〉은 “진보를 참칭할 자격이 없다”며 진보당을 비난하고 “수사에 협조하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한겨레〉도 ‘물에 빠진 사람에게 야유를 보내는’ 듯한 한심한 양비론을 폈다. 심지어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이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이처럼 기성언론들은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 데 기여하는 게 아니라 진실·정의를 파묻거나 애매하게 물타기를 하고 있다.
비열하고 악랄한 프락치 공작까지 벌인 국정원
국정원은 이번 ‘내란음모’ 사건의 정보들을 통합진보당 내에 심어 둔 프락치를 통해 입수했다고 한다. 국정원이 빚이 많은 당원을 거액으로 매수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미 20세기 초 러시아 보안경찰은 “가난하게 살아가는 혁명가들을 이용”, “집단 간의 다툼이나 성원들의 실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들을 이용하라”고 한 바 있다.
이처럼 프락치 공작은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한 짓이다. 프락치는 불신을 퍼뜨려서 우리가 단결해서 함께 운동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박정희와 전두환 등 독재정권에서 있었던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