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는 또 다른 2008년 9월을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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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는 막대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당분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연준이 양적완화를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던 지난여름에는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됐던 신흥국들로 다시 자금이 유입됐다. 큰손들이 다시 신흥국의 주식 등에 투자를 하고 있고, 인도·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바닥까지 떨어졌던 통화 가치가 다시 상승했다.
그러나 양적완화 정책은 지난 수년간 주식, 부동산, 금융상품 등에서 거품을 키웠을 뿐, 실물경제를 회복시키지는 못했다.
이윤율
미국 경제의 경우 부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경제지표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고용가능인구의 노동시장참가율이 1978년 이후로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회복이 더디다. 미국의 비농업 분야 고용은 2007년 말에 견줘 1백70만 명이나 적다.
실물 경제는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마약에 중독된 듯 값싼 이자에 의지해 경제가 굴러갔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자본주의의 불안정과 모순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첫째, 2008년 경제 공황 이후 5년이 지났지만 부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 커졌다. 국제결제은행 BIS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의 국내총생산(이하 GDP) 대비 비금융부문 부채 비율은 2007년 3월 2백80퍼센트에서 2013년 6월 3백12퍼센트로 늘었다. 미국과 영국은 가계 빚이 다소 줄었지만, 27개 주요 국가의 GDP 대비 민간부문 빚 비율은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면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자본이 빠져 나가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기업과 가계의 부실은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금리가 더 오르기 전에 빚을 갚기 위해 서둘러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져서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가 수축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둘째, 낮은 이윤율이라는 근본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최근 JP모건 이코노미스트들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유럽과 개발도상국에서 기업들의 수익률은 떨어졌다. 미국의 수익률은 1년 반 동안 정체 상태였다. 수익률은 공황이 시작되기 전인 2008년 2월에는 13퍼센트였지만 2012년에는 7퍼센트에 불과했다. JP모건이 계산한 기업의 수익률이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이윤율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추세를 볼 수 있기는 하다.
겨우겨우 이자만 갚으며 운영하는 ‘좀비 기업’이 상당하다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개발도상국 경제의 불안정성도 2008년보다 더 커졌다.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은 2008년 위기 이후 외채를 빌려서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썼고 이 때문에 외채가 상당히 많아졌다. 그래서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해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신흥국의 경제 위기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BIS의 전임 수석 이코노미스트 윌리엄 화이트는 높아진 부채와 개발도상국의 거품 등을 볼 때 최근 상황이 “2007년의 상황이 더 나빠진 상태로 돌아오는 듯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세계경제는 일본식 장기 불황으로 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경기침체가 발생하느냐 하는 선택지 앞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모순을 키우고 있는 한국 경제
한국 경제도 세계경제와 비슷하게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신흥국으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한국에도 외국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주식 시장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부채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국가, 기업, 가계의 부채를 합친 국내 총부채는 2007년 2천3백98조 원이었는데, 2012년까지 1천1백45조 원이 더 늘어 5년여 만에 47.8퍼센트 증가했다.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전세난 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계속해서 늘고, 기업들에 세금을 감면해 주고 부자에 퍼 주기 하는 정책 때문에 국가 부채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를 제외하고 대다수 재벌 그룹의 수익성도 악화하고 있다. 자산 규모 상위 20대 그룹 계열사의 영업이익률은 2008년 6.3퍼센트에서 2012년 5.6퍼센트로 줄었다. 삼성그룹은 2008년 6.2퍼센트에서 2012년 10.4퍼센트로, 현대차그룹은 2008년 6.3퍼센트에서 2012년 7.7퍼센트로 늘었음을 감안하면 하위 재벌들의 수익성 악화는 20개사 평균 하락폭보다 더 큰 폭일 것이다.
기업을 운영해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이 상장사의 18퍼센트에 이른다.
정부는 막대한 돈을 풀어 거품을 떠받치고, 기업 퍼 주기 정책을 해 왔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거품만 키워 온 것이다.
이제 더는 경제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거품 떠받치기, 부자 퍼 주기가 아니라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돈을 쓰도록 밑에서 압박해야 한다.
특히,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10대 재벌의 현금성 자산이 크게 늘어 1백24조 원에 이른다. 바로 이런 돈이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쓰이도록 노동계의 저항이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