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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레닌 평전 4: 볼셰비키와 세계혁명》:
레닌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기

《레닌 평전 4: 볼셰비키와 세계혁명》, 토니 클리프 지음, 이수현 옮김, 책갈피, 360쪽, 15,000원 ⓒ책갈피

토니 클리프의 레닌 평전 4부작의 마지막 권 《레닌 평전 4: 볼셰비키와 세계혁명》이 출판됐다.

《레닌 평전 4》는 1919~24년에 레닌과 볼셰비키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건설해서 혁명을 확산시키려고 했던 노력, 그 성공과 실패를 다룬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승리 후 전 세계에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이 넘쳐났다.

혁명의 물결이 유럽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1919년 3월 21일 부다페스트에서, 4월 7일 뮌헨에서 소비에트 공화국이 선포됐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의 노동자들이 거대한 저항에 나섰다.

당대의 혁명가들은 모두 세계혁명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1919년 7월 레닌은 “올해 7월은 힘들고 어려운 마지막 7월이 될 것이다. 내년 7월에 우리는 세계 소비에트 공화국의 승리를 환영할 것이다” 하고 말했다.

이런 전망은 혁명가들의 공상이 아니었다. 당시에 우파들조차 혁명의 기운을 감지하고 인정했다. 겁에 질린 영국 총리 로이드-조지는 프랑스 총리 클레망소에게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유럽 전역에 혁명의 정신이 가득 차 있습니다. 전쟁 전과 다름없는 상황에 대한 근로자들의 불만뿐 아니라 분노와 반감도 매우 심각합니다. 유럽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대중은 기존의 정치·사회·경제 질서를 모두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각국에서 공산당이 등장해 성장했고, 레닌과 볼셰비키는 혁명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 승리로 이끌고자 코민테른을 건설했다.

코민테른은 매우 짧은 기간에 여러 나라에서 공산당을 대중 정당으로 성장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레닌이 러시아 국내 문제로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각국의 신생 공산당에 보낸 세밀하고 구체적인 조언은 놀라울 정도다. 1919년 4월 27일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에 보낸 장문의 전보에서 레닌은 대중에게 널리 읽힐 리플릿과 신문을 제작·인쇄하기 위해 종이와 인쇄기를 몰수했는지까지 확인했다.

그러나 1920년 중반쯤에는 파업·시위 물결이 잦아들고 봉기들이 고립돼 모두 분쇄되면서 혁명운동이 퇴조했다. 헝가리와 바이에른 소비에트 정부가 무너지고, 독일 공산당이 1919년 1월뿐 아니라 1920년 3월 카프 쿠데타 때도 재앙적 실수를 저질렀다.

레닌은 중서부 유럽의 미숙한 신생 공산당들이 쉽게 혁명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이 신생 공산당들에 전략과 전술을 가르치려고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

코민테른은 혁명에서 공산당이 해야 할 구실을 분석하고,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해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를 정했다. 또, 의회 선거나 기존 노동조합에 참여하는 문제와 농업 문제나 민족·식민지 문제 등을 토론하고 방침을 결정했다.

교사와 학생

레닌은 혁명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을 썼다. 초좌파들을 비판하며 대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무조건 활동해야 한다는 레닌의 주장과, 불가피한 타협과 불필요한 타협을 구분해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코민테른은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1923년 6월 불가리아 우익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군사 쿠데타로 전복했는데 불가리아 공산당은 이를 수수방관했다. 코민테른은 불가리아 공산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무장투쟁으로 우익 정부를 전복하라고 명령했다. 무장봉기에 필요한 정치적·조직적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뿐 아니라 코민테른은 독일 공산당의 재능 있는 지도자 파울 레비를 당 지도부에서 쫓아내고 모험주의적 쿠데타(1921년 3월 행동)를 부추겼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상황을 마무리 지은 곳은 독일이었다.

내전을 치르고 힘겹게 살아남은 러시아 노동자 정부가 신경제정책으로 후퇴하고 있을 때 독일에서 새로운 혁명의 희망이 솟아났다. 1923년 독일 노동자들은 천문학적 물가 폭등에 분노해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노동조합 지도부와 개혁주의 정당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비난하고 반대했다. 반면 파업에 함께한 독일 공산당은 순식간에 노동자 대중의 지지를 받는 대중정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독일 공산당 지도부는 노동자들이 정부를 무너뜨렸는데도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공산당 지도부는 1919년과 1921년의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이로써 1918년에 시작된 독일 혁명은 1923년에 최종 패배했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시기, 병상에서도 혁명의 국제적 확산을 위해 분투한 레닌의 삶과 정치는 오늘날 혁명가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많다.

러시아 혁명이 보여 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자 세계는 파시즘과 전쟁이 판치는 야만의 시대로 진입했다.

지은이 토니 클리프는 러시아 공산당과 서구 공산당의 관계를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비유해, 코민테른의 성과가 교사들의 자질뿐 아니라 학생들의 출신 배경, 준비 정도, 자질에도 달려 있었다고 평가한다.

레닌과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신생 서구 공산당이 혁명의 전략·전술을 배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지만, 이것이 각국 공산당의 실제 투쟁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해, 엄격한 원칙과 혁명적 현실주의를 잘 결합시킨 혁명적 정당은 각국의 혁명가들이 자체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단련되면서 건설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코민테른의 실수에 분통터지기도 하고, 암울한 상황에서 겪은 레닌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죽어가면서도 러시아 혁명을 구하려 한 레닌의 필사적 투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준비된 혁명적 정당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리고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만약에’ 라는 단어가 자꾸 머리를 맴돈다. 레닌이 이랬다면, 트로츠키가 저랬다면, 코민테른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 등.

시간이 한참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는 당시 상황에서 당시의 혁명가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만 혁명의 한복판에 있었던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실패에서 배워, 이후의 혁명에 적용하는 것은 온전히 오늘날 혁명가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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