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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약속〉의 한 주인공 모델 이종란 노무사 인터뷰:
“광범한 대중 운동으로 삼성을 바꿔야 합니다”

2003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뒤 백혈병으로 숨진 고(故) 황유미 씨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삼성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실화를 그린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지지로 화제가 됐고, ‘개봉 전 영화’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물론 높은 관심을 거슬러, 상영관 확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체 관람이 돌연 취소되는 일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CJ, 롯데, 중앙일보 등이 소유하는 대형 극장들이 삼성을 공공연히 비판한 영화를 상영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봉 첫날부터 높은 관객수를 기록했고, 곳곳에서 영화보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파업 중인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도 파업 프로그램 중 하나로 단체 영화 관람을 하고, 영화를 널리 봐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극중 ‘진성’ 그룹에 맞서 싸우는 노무사 난주의 모델이 됐던 이종란 노무사(가운데 사진)를 만났다. 이종란 노무사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종란 노무사 ⓒ이윤선

2007년 여름 유미 씨 아버님을 처음 만났어요. 당시에 아버님은 딸을 잃은 지 얼마 안 되던 때여서 굉장히 슬픈 표정이었는데, 매우 단호하게 얘기하셨어요.

“내 딸이 2인 1조로 일하는 곳에서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넣었다 뺐다 하는 일을 했는데, 백혈병에 걸렸어요. 같이 일했던 이숙영 씨도 백혈병에 걸렸고, 둘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삼성은 개인 질병이라고 우깁니다. 삼성에 노조라도 있었으면 내 딸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예요”라고요.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여러 단체들과 힘을 합해 대책위를 만들었죠. 이렇게 ‘반올림’이 2007년 11월에 결성됩니다.

당시 아버님의 말에 따르면 삼성반도체에 다니다가 백혈병을 얻은 사람이 6명쯤 있는 것 같다고 했죠. 우리는 발족 기자회견에서 ‘한 공장에서 6명이나 백혈병 피해자가 있는데 왜 산재가 아니냐’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후 거짓말처럼 제보가 들어왔어요. 정말 소름끼쳤죠. 처음에 6명이라고 했는데, 13명, 18명… 그러다가 우리에게 제보해 준 최초의 피해자분 박지연 씨가 유미 씨처럼 똑같이 23살의 나이로 2010년 3월 31일에 돌아가셨어요. 그동안 투병 과정을 다 봐 왔는데, 우리로선 굉장히 충격이었고, 박지연 씨의 사망이 언론을 많이 탔습니다. 그러면서 제보도 급격하게 늘었어요.

현재까지 백혈병이나 뇌종양, 각종 암, 유사 희귀 질환에 걸린 사람이 삼성전자에서만 1백38명, 사망자는 56명이에요. 삼성의 계열사까지 합치면 1백80여 명, 사망자는 70여 명입니다.

당시 정부도 백혈병 발병에 대해 역학조사를 실시했는데 매우 형식적이었고, 아버님 말로는 유미 씨가 근무했던 것과 [환경이] 다르다고 했어요. 이미 4~5년이 지난 후였으니까요. 당연히 [산재] ‘불승인’이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이미진

그래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불승인’이 나온 6명이 함께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10년 1월이에요.

우리 나라에서 백혈병, 암을 산재로 인정받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사고성 재해에 비해 암과 같은 질병은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지 알아 내기가 힘들죠. 이걸 아픈 노동자나 유족에게 입증하라고 해요.

0.1퍼센트

삼성이 화학물질 정보를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안전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도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모든 걸 입증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 인정률이 0.1퍼센트 미만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싸움을 해야죠.

소송에 이길 수 있었던 건, 결정적으로 증인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분도 희귀 질환에 걸린 분이었거든요. 용기 있게 작업 환경이 어땠는지 잘 얘기해 줬어요. 또, 과거에 삼성이 엔지니어들에게 지급한 ‘환경 수첩’에 여러 암 유발 물질이 기재돼 있었는데, 이런 증거들도 찾게 됐던 거죠.

그래서 2011년 6월 23일 황유미 씨를 포함한 2명이 산재 인정을 받습니다. 세계 최초로 반도체 공장 산업재해 인정이라는 이정표를 남긴 거예요.

그런데 공단과 삼성이 곧바로 항소해서 현재까지도 항소심이 안 끝났어요. 법원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으로 보고,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것 같아요.

영화는 1심에서 끝이 납니다. 영화 말미에 실제 인물 고(故) 황유미 씨 추모 기자회견 때의 유미 씨 아버님 사진도 나오고요. 그리고 이 영화에 ‘제작두레’를 한 1만 명의 이름이 올라가요. 그 자체가 엄청난 감동을 주죠.

영화 촬영 끝나고 속초에서 쫑파티를 한다고 해 제가 황유미 씨 아버님, 어머님과 같이 갔거든요. 그 때 처음으로 [영화 속 고(故) 황유미 씨를 연기한] 박희정 배우가 삭발한 모습을 봤는데, 박희정 씨가 모자를 잠깐 벗었을 때 모두 다 펑펑 울었어요.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후원으로 제작비가 마련됐고, 이 영화를 꼭 만들겠다는 영화 노동자들의 일념으로 어려운 고비고비를 넘겨 만들어졌어요. 처음엔 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만들어진 것 자체가 기적이고 감동이죠.

그런데도 영화가 공정하게 상영되지 못하는 것은 정말 화가 나요. 문화예술마저도 거대 자본이 통제하는 것이죠.

예전에는 극소수의 피해자와 사람들만이 삼성 문제를 얘기했다면, 지금은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모임들이 생겼어요.

그중 하나가 ‘반올림’이고, 삼성전자서비스노조도 대중적으로 건설됐고, 삼성 노동인권지킴이도 생겼죠. 민주노총 중심으로 삼성 대책기구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이런 조직들이 튼튼하게 자리잡는 것, 그런 속에서 광범한 대중 운동을 만들면 삼성을 바꿀 수 있을 거예요.

특히나 지금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긴다면 삼성의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많은 자신감을 안겨 줄 거예요.

‘반올림’도 이 싸움을 끝까지 하겠습니다.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에서 산재 판정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삼성에게 직업병 피해에 대해 제대로 사과 받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쟁취해 낼 것입니다.

오는 3월 6일은 고(故) 황유미 씨 7주기 추모 기일입니다. 이번 기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유미 씨를 비롯해 직업병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삼성을 바꿔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낼 것입니다.

영화가 흥행하는 것도 중요해요. 삼성의 수많은 직업병 피해자들에게도 힘이 될 뿐 아니라, 인간답게 살고자 민주노조를 건설해 싸우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