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연금 개악 반대 투쟁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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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명예퇴직을 신청한 교사들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월 11일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들에 따르면 5천1백72명의 교원이 명예퇴직을 신청해, 지난해 2월의 4천2백2명보다 23.1퍼센트나 늘었다. 일부 교육청에서는 1~2년 만에 명예퇴직자가 두 배로 급증하기도 했다. 명예퇴직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됐고 ‘명퇴 재수’가 발생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탈교단 러시’ 뒤에는 공무원연금 개악이 있다. 공무원연금법이 개악되면 연금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은 교사들의 임금의 일부다. 생애소득의 일부이자 상대적으로 낮은 교원 급여에 대한 보상이다. 공무원연금에는 퇴직금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연금을 ‘더 내고 덜 받고 더 늦게 받는 식’으로 개악한다는 것은 결국 교사 임금의 일부를 빼앗는 것이자 미래를 훔쳐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학연금을 받는 사립학교 교사들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사학연금이 공무원연금에 준해서 지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개악은 모든 교사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노후를 위협하는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수차례 개악되면서 ‘더 내고 덜 받고 더 늦게 받는’ 쪽으로 후퇴했다. 특히 2009년 개악으로 연금이 크게 하락했다. 교사가 내는 보험료는 27퍼센트나 인상됐고 수령 연금액은 최대 30퍼센트까지 감소했다. 2010년 이후 임용된 신규 교사는 노후소득이 1억 원 이상 깎이고, 연금 개시 연령이 65세로 연장되는 바람에 정년 퇴임을 해도 연금 받을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당시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공동 투쟁을 해 정부의 연금 개악안을 일부 좌절시키긴 했으나 세대간 연금 단절에 타협한 것은 잘못한 일이다. 교사 간 ‘연금 불평등’은 향후 개악의 빌미가 되거나 교사 집단 내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정부 안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더 파괴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전교조 조합원들은 물론 교사라면 누구나 연금 개악에 불만이 많고 불안감도 크다. 지난 1월에 열린 전교조 전국일꾼연수에서도 많은 활동가들이 공무원연금을 중요한 투쟁 과제로 꼽았다.
정부와 언론의 거짓말
그러나 교사들의 광범한 불만에 견줘 전교조 지도부의 대응은 아쉬운 면이 있다. “사회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자신감 부족으로 교사들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적극 요구하기를 꺼리는 듯하다.
그러나 교사와 공무원들이 공무원연금 개악을 반대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다. 정부는 경제 위기의 책임을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하지만, 공무원연금 적자가 노동자 ‘특혜’ 탓이 아니다.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정부 부담률과 연금 기여자 수의 부족이 문제다. 프랑스의 정부 부담률은 62.1퍼센트, 미국은 35.1퍼센트, 독일은 100퍼센트인데 반해 한국 정부는 고작 9.6퍼센트만 부담한다!
또, 공무원연금 기금이 고갈된 것은 결정적으로 IMF 직후 단행한 대대적인 공무원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그 결과 연금 지출은 는 반면, 기여금을 낼 공무원은 줄어들었다.
따라서 정부 부담률을 대폭 높이고 정규직 공무원과 교사를 확충해 연금 기여자를 늘리는 것이야말로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실질적 해결책이다.
한편, 정부와 보수 언론은 ‘혈세 먹는 하마’, ‘귀족 연금’, ‘국민 주머니를 터는 공무원연금’ 운운하며 복지 ‘먹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또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려 한다. 교사와 공무원 노동자들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이데올로기 공격이다.
정부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이간질시켜 각개격파 하려 하지만, 둘 다 노동자 고통전가라는 면에서 한 몸이다. 지난 경험을 보면, 한쪽의 후퇴가 결국 다른 쪽을 하락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정부나 사용자들에게 양보하거나 고통 분담한 노동자들의 희생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전체 노동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이 양보해도 결코 다른 노동자들이 덕을 보지 않는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전체 노동계급에게 경제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려고 공무원연금 개악, 공공부문 구조조정, 민영화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만약 공무원연금을 개악하고 나면, 국민연금을 더 노골적으로 개악하려 들 것이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나 시간제 공무원·교사 같은 노동유연화 정책이 성공을 거둔다면 이 공격을 전체 노동계급에게로 확대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격과 이간질, 각개격파 시도에 맞서 노동계급의 단결된 저항이 중요하다.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이 연금 개악을 막아낸다면 이는 전체 노동자를 향한 박근혜의 공격을 무디게 할 것이며, 다른 노동자 부문의 자신감을 고무할 것이다. 부문을 넘어 전체 노동계급이 공무원연금, 기초연금, 국민연금 개선 투쟁으로 뭉쳐야 한다.
설령 여론 지형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단호한 투쟁으로 광범한 단결과 연대가 건설된다면 여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예컨대, 전교조의 시정명령 거부와 철도 파업은 사회적 지지가 투쟁을 만들기보다는 그 반대로 강력한 투쟁이 사회적 지지를 구축하는 것임을 잘 보여 줬다.
노동조건과 교육의 질은 연결돼 있다
교사들의 연금은 교육의 질 문제와 연결돼 있다. 연금이나 임금 등 교사들의 노동조건은 아이들의 학습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되면 공공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듯이 교육도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교직의 인기가 올라가며 유능한 자질을 갖춘 교사들이 많이 유입됐다. 이는 교사라는 직업이 고용과 노후 안정을 꽤 보장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금 개악으로 교사들의 처지가 나빠지고 노후 불안감이 커진다면 경험 있는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거나 젊은 세대들의 교직 선호도가 떨어질 것이다. 이미 지난 2009년 연금이 개악되면서 조기 퇴직이 급증했고 최근에는 ‘명퇴 러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교사들의 노동조건과 교육의 질 향상은 그래서 직결되는 문제다.
따라서 교사가 임금과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싸우는 것은 곧 교육의 질을 높이는 투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