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서방에도 러시아에도 반대한다 ―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제국주의 전쟁 놀음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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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국제사회주의자단체의 지도자 안제이 제브로프스키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최근 갈등을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접경국이자 나토 회원국으로 최근 미국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곳이기도 하다.
위장복을 입은 러시아 군인들이 크림반도 거리에 나타나고 이에 서방과 새 우크라이나 정부가 대응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전쟁 위기에 내몰렸다.
미국도 이에 대응하며 전투기와 군인들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서방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의 충돌에서 우리는 누구도 지지할 수 없다. 우리는 나토든 유럽연합이든 서방의 어느 나라라도 우크라이나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 동시에 우리는 러시아가 개입하는 것도 반대한다.
제국주의 열강은 현 위기를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앞날을 각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한다. 러시아는 야누코비치를 후원해 왔고, 서방의 정치인들은 마이단[우크라이나 키예프 소재 광장] 점거 운동에 직접 개입했다.
미국도 러시아도 전쟁을 벌이고 싶어 하지는 않지만, 갈등이 고조되면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
진보적 제국주의는 없다
현대의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는 선진 자본주의 열강이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을 벌이는 체제를 말한다.
전쟁과 사회 부정의에 진지하게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서방과 러시아 중 더 진보적으로 보이는 한 쪽을 지지하는 데로 이끌리고 있다. 서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유럽연합의 ‘현대화’라는 가면을 근거로 들고, 러시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흔히 옛 소련을 사회주의로 보는 환상이 있는 사람들과 같다.
즉, 어떤 사람들은 서방만 제국주의로 보고, 다른 사람들은 러시아만 제국주의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두 견해에 모두 반대해야 한다. 물론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국제주의적 구호는 현재 상황에도 적용되지만, 그렇다고 자국 지배계급과 충돌을 벌이는 다른 제국주의 열강에 진보적 색깔을 입혀서는 안 된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전통에 서 있는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의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대안이] 아니다” 하는 구호는 냉전 시기에 사회주의자들이 진정한 사회주의 전통을 지키는 데 일조했다. 이 구호는 현재 상황에도 매우 적합하다.
두 종류의 민족주의
현재 크게 두 종류의 민족주의가 우크라이나 민중을 분열시키고 있다. 두 민족주의는 각각 서방 열강이나 러시아한테 지원을 받는다.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가장 강력한 반(反)러시아 민족주의는 뿌리가 깊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했지만 [그 뒤로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했다. 소련 시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억압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억압 역사는 훨씬 더 오래됐다. 크림반도에 거주하는 타타르족(크림반도 인구의 12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에 대한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타타르족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1944년에 우즈베키스탄으로 쫓겨났다. 그들이 대규모로 귀향하기 시작한 지 이제 몇 십 년 되지 않았다.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서방을 미화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다른 한편, 러시아어 사용자 수백만 명은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여긴다. 야누코비치 퇴진 이후에 들어선 새 우크라이나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제외시킨 것이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대중적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서부에서는 우크라이나 깃발이, 동부에서는 러시아 깃발이 휘날리는 광경은, 두 민족주의의 위세를 보여 주는 동시에 그것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노동자들도 동서로 분열돼 있음을 보여 준다.
러시아는 반(反)파시즘 세력이 아니다
사회 변화를 바라고 민주주의 확장을 염원하던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새 정부에 파시스트들이 장관으로 임명된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파시스트들이 장관으로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마이단 점거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덕분이었다. 이는 우크라이나 좌파가 오랫동안 취약했고 조직 좌파가 항의 운동 속에서 성장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야누코비치의 퇴진을 “파시스트의 쿠데타”라고 주장하는 것은 러시아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이다. 야누코비치가 몰락한 진정한 이유는 대중적 항의 운동이 일어나고 경찰과의 충돌이 벌어지며 1백여 명이 사망하는 가운데 이전까지 그를 지지한 올리가르히[소련 붕괴 후 시장 자본주의로 전환할 때 부와 함께 막대한 정치 권력을 누린 집단] 일부가 지지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에 파시스트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푸틴의 우크라이나 개입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푸틴이 파시즘에 맞서 싸운다고 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시각도 없다. 러시아 국내에서 푸틴은 극우 정치인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를 적극 활용하고 파시스트 단체들의 활동을 눈감아 준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좌파가 취약한 가운데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개입은 파시즘을 비롯해 온갖 민족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
다른 한편, 서방은 우크라이나 새 정부를 지지하면서 거기에 파시스트가 섞여 있다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서방 정치인들은 마이단 점거 운동에서 파시스트 지도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연단에 설 태세가 돼 있었다.
노동자들을 향한 공격과 반격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은 자국 올리가르히들에게 공격받아 생활수준이 떨어진 것에 이어 이제는 제국주의 열강이 가하는 압력까지 받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1백10억 유로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 조건으로 IMF와 협약을 맺고 그에 따라 긴축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러시아 역시 [국영 천연가스 회사] 가스프롬을 통해 그 동안 우크라이나에 할인해 주던 천연가스 가격을 4월 1일부터 올려 받겠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서부의 마이단 점거 운동과 동부의 친러시아 시위 모두에서 올리가르히의 지배에 반대하는 광범한 정서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 때문에 노동자와 빈민들이 올리가르히에 맞서 단결하지 못하고 분열해 있다.
미래를 위한 최상의 대안은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모든 올리가르히에 맞서 항의 운동과 파업을 벌이고, 제국주의 전쟁 놀음을 지지하는 모든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이런 전망이 요원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원한 때문에 4백만 명도 안 되는 인구 중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던 보스니아*에서, 최근 노동계급이 그런 민족주의 분열을 적극적으로 뛰어넘어 투쟁을 벌인 것을 보면, 그런 단결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