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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구조조정:
양보 교섭은 대안이 아니라 독이다

한국지엠 사측의 구조조정 공세가 점점 본격화되고 있다. 사측은 최근 군산 공장에서 비정규직 해고, 무급·유급 순환휴직, 전환배치 등을 예고했고, 사무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한국지엠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평의 1·2공장 통합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것은 인력감축과 임금 삭감의 고통을 알리는 것이어서,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측은 부평 2공장에서도 생산량을 줄인다는데, 이렇게 되면 누군가는 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내하청 동지들이 먼저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군산 공장은 이미 특근도 없고 노는 날도 잦아 임금이 계속 줄었습니다. 휴무 때 건설 현장에 가거나 대리운전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앞으로는 더 불안해질 것입니다.”

지엠은 한국 공장의 물량을 유럽으로 빼고, 신차 출시 계획도, 투자 계획도 내놓지 않아 불안감을 더한층 자극하고 있다. 야비하게도 사측은 노동자들의 불안 심리를 파고들어, “파업하면 신차 배정 없다”, “통상임금 판결로 인건비가 상승해 경쟁력이 없다”고 협박하며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지엠 노동자들을 향한 공격이 전 세계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은 더하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지난 몇 년 사이 공장 폐쇄와 대량해고, 노동자 쥐어짜기로 기력을 회복해 공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간의 침체를 만회하려 지엠·도요타·폭스바겐 같은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면서 2012년을 전후로 다시금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격화되는 세계 경쟁

지엠·포드가 호주에서 공장을 폐쇄하고 철수키로 한 것, 프랑스의 완성차 업체 1위를 자랑하던 푸조-시트로엥이 전 직원의 10퍼센트인 8천여 명을 해고한 것 등은 그 대표적 사례다.

지엠은 이번 구조조정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08년 파산 직후 미국에서만 공장 13곳을 폐쇄하고 직원 3분의 1을 해고했던 지엠은 이번에도 호주 공장 홀덴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지엠은 2017년 공장 폐쇄를 앞두고 지난해부터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남아 있는 이들에겐 노동강도를 높이며 고통을 주고 있다. 르노도 2016년까지 프랑스 직원의 14퍼센트인 7천5백 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한국의 자동차 기업들도 결코 이런 구조조정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근래 세계 자동차 5위 기업으로 도약한 현대·기아차 그룹도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생산성 향상에 나서며, 노동강도를 높이고 현장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들이 통상임금 정상화와 노동시간 단축에 그토록 진저리를 치는 것도, 임금피크제 도입에 열의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기가 심각한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에선 이미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희망퇴직’과 비정규직 순환 휴직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하다. 사측은 군산발 구조조정을 부평으로, 비정규직발 해고를 정규직으로 확대하며 노동자들을 옥죌 것이다.

저항이 일어날지, 또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결정돼 있지 않다. 현장조합원들이 공격에 맞서며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킬 것인지가 결정적인 변수다.

최근 한국지엠 군산지회는 양보 교섭에 합의했다. 노조 집행부는 이번 합의로 ‘2교대 → 1교대 전환’ 시도를 막았다고 하지만,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길을 열어 주고 정규직의 전보·파견, 전환배치 등도 수용했다.

이런 양보 교섭은 즉각 현장조합원들의 불만을 샀는데, 부평·창원 비정규직지회는 노조가 합의한 “비정규직 순환휴직은 또 다른 형태의 정리해고”라고 규탄했다. 군산 공장 정규직 노동자들도 분통을 터뜨리기는 마찬가지다. 한 노동자는 고용불안이 더욱 심해질 것을 걱정하며 이번 양보가 낳을 파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군산의 합의는 부평이나 사무직 구조조정에도 탄력을 줄 것입니다. 사측은 ‘봐라. 군산도 이렇게 했는데, 너희도 받아들여야 할 것 아니냐. 안 그러면 물량을 뺄 거다’ 하고 협박하며 우리를 경쟁시킬 것입니다.”

2001년 악몽의 재현을 막으려면, 지금부터 고통전가와 이간질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사진은 2월 19일 2001년 정리해고 13주년 규탄 집회. ⓒ사진 출처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반면교사

이런 ‘바닥을 향한 경쟁’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배자들이 즐겨 써먹는 수법이다. 특히 지엠은 지난 수년간 전 세계 공장들에서 생산성 경쟁을 시켜 노동자들을 쥐어짜 왔다. ‘경쟁에서 지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고, 그러면 고용도 없다’는 식으로 노동자들을 협박하며 끊임없이 양보와 후퇴를 강요해 온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기업들도 그렇듯이, 지엠의 생산 계획은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나 노동조건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지엠은 호주에서 노동자들을 최대한 쥐어짜고 정부 지원금도 받았지만, 그럼에도 단호하게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생산량 조절, 공장의 존폐 여부는 수익성과 시장의 크기, 종합적인 생산 여건 등에 달린 문제다.

그런데도 전미자동차노조는 2007년 이래 노동자들에게 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요하는 지엠의 악랄한 정책에 힘을 실어 주는 구실을 했다. 이 노조는 임금 동결, 일정기간 파업 금지, 퇴직자건강보험 삭감 등 대대적인 양보안에 사인했고, 신입 사원에게는 기존 노동자 임금의 절반만 주는 ‘이중임금제’ 도입에도 합의했다.

전미자동차노조 집행부는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어느 정도라도 지키려면 불가피하다고 변명했지만, 이는 신입 사원들에게 끔찍한 저임금의 고통을 안겨 줬을 뿐 아니라 기존 노동자들에게도 고통을 가했다.

일단 이중임금제를 도입한 사측은 몇 년 동안 이런저런 명목으로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노동자 다수를 공장에서 내보냈고, 이제 노동자 대부분이 저임금에 시달리게 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엠은 미국 공장에서 체결된 양보 교섭을 손에 쥐고, 다른 나라 공장들에도 저임금과 노동조건 악화를 강요했다. 또, 지엠과 경쟁하는 포드·크라이슬러 등이 지엠을 따랐고, 미국 시장에 진출한 현대·기아차도 처음부터 임금을 낮게 책정했다.

세계적인 경쟁 압력을 받는 기업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이런 전미자동차노조의 “모범 사례”를 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지엠 군산 공장의 양보 교섭 사례가 앞으로 어떻게 적용될지는 정해진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사측은 이번 합의를 이용해 부평 공장에서도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요구할 것이고, 정규직의 일자리를 지키려면 비정규직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이간질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사측의 고통전가와 바닥을 향한 경쟁 시도에 맞서 싸우는 게 매우 중요하다. 군산 공장의 양보 교섭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군산·부평·창원 공장의 노동자들이 단결해 임금 삭감과 인력감축 시도 모두에 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