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라는 말은 ‘변방’이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는 수백 년 동안 열강이 벌인 전쟁 속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런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러시아의 볼셰비키가 보여 줬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의 내전 기간에 볼셰비키가 우크라이나를 대했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볼셰비키의 지도자 레닌은 제정 러시아를 “여러 인민들을 가둔 감옥”이라고 불렀다. 러시아 제국이 그만큼 다양한 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했기 때문이었다.

차르는 대(大)러시아인 우월주의를 내세웠고, 제국에 속한 다른 민족들이 문명화가 덜 됐다며 멸시하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억압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 제국은 1870년대부터 1905년까지, 그리고 1914년부터 다시 우크라이나어 문학과 신문을 금지했다.

제1차세계대전 개전 전에 레닌은 이렇게 주장했다. “민족 문제에 관한 노동계급 민주주의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 어떤 나라도, 어떤 언어도 특권적 지위를 누려서는 절대 안 된다. 완전한 자유 속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독립국을 세울 수 있게 하는 것이 민족들의 정치적 자결 문제를 푸는 해결책이다.”

우크라이나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볼셰비키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당하는 끔찍한 멸시에 강하게 반대하고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의 완전한 평등을 요구한다.”

우크라이나 농민들은 거의 다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했다. 동부에 사는 농민들은 러시아 지주에게, 서부에 사는 농민들은 폴란드 지주에게 혹사당했고 그래서 그 둘 다 증오의 대상이었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하리코프를 비롯한 공업 중심지에서 노동자와 관리자는 대체로 러시아계 이주민이었다.

이 같은 도시와 농촌의 차이 때문에 단일한 우크라이나 문화를 창출하려 애쓴 중간계급 민족주의 운동은 어려움을 겪었다. 도시의 혁명가들도 대체로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우크라이나는 제1차세계대전 중 러시아와 독일이 맞붙는 전장이 됐다.

1917년 2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차르를 타도했고, 수도 페트로그라드에는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러시아 2월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에는 ‘라다’라는 기구가 들어서 우크라이나를 통치했다. 라다는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는데 소비에트와 달리 선출된 기관이 아니었다.

1917년 6월 라다는 ‘우크라이나 자치공화국’을 선포했다. 10월에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임시정부를 몰아냈다.

라다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민의 연방’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인정했지만, 반대로 라다는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카자크 기병대

오히려 라다는 [제국주의 열강 중 하나인] 프랑스한테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기대했다. 라다는 카자크 기병대가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를 치러 갈 때는 길을 내줬지만 볼셰비키 군대에는 그러지 않았다.

라다가 이런 군사적 책략을 부리는 한편에서 파업과 시위를 동반한 대중적 사회운동이 일어났다. 하리코프에서 라다와 경쟁하는 소비에트 정부가 생겨났고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우크라이나의 두 정부[라다와 소비에트]는 전쟁에 돌입했다. 이 전쟁은 빠르게 러시아에서 일어난 내전의 일부가 됐다. 제1차세계대전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양쪽의 열강은 이제 갓 태어난 소비에트 국가를 목 졸라 죽이겠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완전히 일치했다.

처음에 제국주의 군대들은 러시아로 직접 쳐들어갔다. 그러나 이후에는 차르 제국 출신 장군들이 이끄는 ‘백군’을 지원하는 것을 택했다.

볼셰비키는 페트로그라드를 지키던 적위대(Red Guard)를 적군(Red Army)으로 확대해서 백군에 대응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레온 트로츠키가 적군을 이끌었다.

적군은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적군은 차르 시절의 지주와 지배자들이 복귀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던 노동자, 농민, 소수민족들에게 새 세상을 약속했다.

우크라이나 대중 가운데 볼셰비키는 많지 않았지만 이 전략은 우크라이나에서 금세 효과를 봤다.

라다의 수장 볼로디미르 빈니첸코는 투덜거렸다. “우크라이나 주민의 압도 다수는 우리편이 아니다.” 갈수록 많은 세력이 라다를 등지고 볼셰비키로 넘어갔다.

적군이 진격하자 라다는 수도 키예프를 버리고 후퇴했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는 독립적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설립을 선포했다.

기층의 지지를 잃은 라다는 권력을 지키려고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대를 불러들였다. 이 나라들은 적극적으로 군대를 보냈다. 1918년 3월 초 이 군대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했다. 이 새로운 지배자들은 라다를 해산하고 우크라이나에 괴뢰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독일에서 대중운동이 일어나자 우크라이나를 계속 점령하기가 힘들어졌다. 1918년 말로 가면서 전쟁에 반대하는 병사 반란과 파업이 잇따랐고, 독일군은 자국의 혁명에 대처해야 해서 우크라이나에서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괴뢰 정부는 무너졌고 라다가 다시 통치권을 잡았다. 이제는 시몬 페틀류라가 라다를 이끌었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점령을 거치면서 라다에 대한 지지는 떨어진 상태였다.

환영

이듬해 봄 적군은 다시 키예프로 진격했다. 적군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환영을 받았다.

민족주의자들은 퇴각하면서 유대인을 학살했다.

이후 1919년에 악랄한 백군 장군 데니킨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했다. 데니킨은 주민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했고 우크라이나의 질서는 무너졌다. 네스토르 마흐노 같은 아나키스트를 포함해 혁명가들은 저마다 군대를 만들었고 농촌에는 비적들이 나타나 마을 통제권을 놓고 다퉜다.

1919년 말 적군은 백군을 몰아냈다. 마침내 평화가 오는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페틀류라가 폴란드에서 군대를 불러들였다. 적군은 폴란드군과 전쟁을 벌였다.

자기 세력권을 넓히려는 또 다른 열강의 침공에 우크라이나 민중은 또다시 희생됐다. 민족주의자들에게 폴란드 지주들에 대한 적개심은 여전했다. 그래서 그들이 보기에 페틀류라는 배신자였다.

소비에트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지역에서 폴란드 군을 쫓아냈지만 1921년 전쟁이 끝날 즈음의 협상 결과로 우크라이나인 4백만 명은 폴란드에 속하게 됐다.

마침내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이 안정적으로 들어섰다.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은 우크라이나를 병합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여러 라다 정부를 거치면서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에게는 기댈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1920년 레닌은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어떠한 우월감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닌은 일부 볼셰비키가 “우크라이나어를 2등 언어로 격하시키려고 작위적으로 애쓰는” 것을 강하게 비난했다.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모든 공무원이 우크라이나어를 배워야 하고 우크라이나의 대토지를 러시아의 식량 공급 기지로 삼지 말고 우크라이나 농민들에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볼셰비키의 정책은 단지 말에 그치지 않았다. 차르의 속국이었던 나라 민중의 생활은 1920년대 동안 개선됐다.

볼셰비키는 차르 제국한테 억압당하던 나라들뿐 아니라 아일랜드, 터키, 중국, 인도 등 다른 제국주의에 시달리는 나라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입장을 취했다.

과거 러시아 제국에 속했던 나라에서 이제는 러시아어 사용이 강요되지 않았다. 각 나라에서 학교는 자국어를 가르쳤고 정부도 자국어를 사용했다. 어떤 곳에서는 새 국가가 나서서 그동안 제약당하던 언어로 글을 쓰도록 지원했다. 많은 출판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슬림

토착민들이 러시아인들보다 우선해서 고용됐다. 각국 소비에트는 대학을 설립해 비(非)러시아계 지도자를 양성했다.

변화가 가장 극적이었던 곳은 러시아 동부 무슬림 거주 지역이었다. 러시아의 2월혁명을 보고 무슬림 수백만 명이 급진화했다.

최초의 전(全)러시아 무슬림 의회가 1917년 5월 1일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대표자 1천 명 중 2백 명은 여성이었다.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지역에서는 샤리아 사법 제도[이슬람 율법]가 등장했다.

비극이게도 이런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지독한 반혁명을 일으켜 러시아를 이끌게 된다.

러시아만의 힘으로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는 데 필요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기 위해 스탈린은 볼셰비키가 없앤 억압 정책을 되살렸다.

1939년 망명 중인 트로츠키는 이를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크라이나 서부의 대중이 크렘린[러시아]에 보내던 확신과 공감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벌어진 이후 우크라이나 서부의 그 누구도 이제는 크렘린의 관할 아래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비록 지금도 이름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이지만 말이다.

“우크라이나 서부, 부코비나, 카르파토-우크라이나의 노동자·농민 대중은 지금 혼란에 빠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 때문에 가장 반동적인 패거리가 자연스레 지도력을 갖게 된다. 이 패거리들은 각자의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거짓된 독립을 약속받는 대가로 이러저러한 제국주의 열강에 우크라이나 민중을 팔아먹으려고 한다.”

통탄스럽게도, 최근의 사건을 보면 오늘날에도 변한 것이 거의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