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노동자들이 법제도 개선을 위한 투쟁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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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가 3월 29일 국회 앞에서 전 조합원 상경 집회를 개최한다. 이번 집회는 화물연대의 5대 요구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다.
화물 노동자들은 1990년대까지 운송업체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였다. 학습지, 건설기계 등 다른 특수고용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관련 산업이 호황일 때 정규직으로 고용된 화물 노동자들은 화물운송 경기가 주춤하자 지입차주, 즉 특수고용노동자가 됐다. 운송업체는 지입차주에게 운송료를 조금 더 많이 주는 유인책을 쓰기도 하면서 자신의 차량을 노동자들에게 팔고 지입계약을 맺어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생기는 위험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화물운송을 하려면 정부로부터 사업면허를 취득하고 번호판을 발급받아야 한다. 사업면허 발급 요건들을 갖추기 어려운 화물 노동자들은 매달 수십만 원의 지입료를 주며 지입계약을 맺은 운송업체의 번호판을 자신의 화물차에 달아야만 화물운송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차량등록증의 명의를 운송업체로 변경하기 때문에 화물 노동자가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2억여 원의 빚을 지고 구입한 화물차의 소유주가 운송업체로 바뀌어 버린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악용해 운송업체가 실제 차주인 화물 노동자도 모르게 차량을 담보로 저당을 설정하거나, 임의로 차량을 대·폐차 처리하기도 한다.
지입제 하에서 양산된 불법 다단계 구조는 화물노동자들의 고통을 배가시킨다. 화물운송물량은 확보하지 않고 단지 지입료로만 먹고사는 지입전문회사가 화물운송업체 중 절반이 넘는다. 따라서 화물노동자들은 지입회사에는 지입료를, 화물운송을 주선해 주는 운송업체에는 알선수수료 명목으로 몇 단계에 걸쳐 운송료의 일부를 뜯긴다. 컨테이너, 트레일러 등 대형 화물차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화주(화물을 운송해 달라고 맡긴 업체)가 지불하는 운송료의 60퍼센트밖에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불법 다단계 구조를 근절하겠다며 시행한 직접운송의무제는 오히려 운송업체들이 번호판을 무기로 휘두르게 만들어 화물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멍들게 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르면 화주의 운송 의뢰를 직접 받는 대형 운송사의 경우 화물의 60퍼센트를 직영차량으로 운송하고 나머지를 2차 운송사에 위탁할 수 있다. 2차 운송사는 대형 운송사로부터 위탁받은 화물을 1백 퍼센트 직영차량으로 운송해야 한다. 대형운송사의 직영차량 비율이 5퍼센트밖에 안 되고 2차운수업체들도 직영차량의 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지입전문회사에 수천만 원을 주고 번호판을 사오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차와 같이 화물 물량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대기업들은 물류자회사를 만들어 화물운송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데, 이 자회사들이 번호판을 확보하려고 갖은 횡포를 부리고 있다. 또, 운송업체들이 번호판 확보 경쟁을 하며 번호판 가격이 상승하자 일부 운송업체는 번호판 장사를 위해 회사에 소속된 화물 노동자에게 지입계약 해지를 강요하기도 한다.
노예계약
대구경북의 한 화물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낮은 운송료와 번호판을 볼모로 한 운송사의 횡포 때문에 일주일에 단 하루밖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쪽잠’, ‘갈치잠’을 자며 일을 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특수고용노동자로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데다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
포항에서 H빔을 실어 나르는 트레일러 노동자의 경우 보통 오후 2~3시에 들어가서 다음 날 새벽 4~5시가 돼야 비로소 짐을 싣고 출발한다.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녘에 운행을 시작하게 되면 화물과 졸음운전 사고의 위험도 함께 싣고 도로로 나서는 것이다.
화물차량 구입 때문에 대출받은 돈을 매달 2백50만~3백50만 원씩 갚아야 하기 때문에 낮은 운송료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해야만 한다. 한 번이라도 더 운송을 하려고 과속과 속칭 ‘따당’(서울-부산과 같은 장거리를 하루에 왕복하는 행위)과 같은 위험한 운송 행태로 내몰리고 있다. 그래서 화물 노동자가 연락이 되지 않아 위치 추적을 하다 보면 고속도로 휴게소에 세워진 차 안에서 잠들었다 과로사하는 안타까운 일도 종종 벌어진다.
더구나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처지는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고자 저항에 나서려 할 때 발목을 잡는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운송회사들은 ‘지입계약 시 화물연대를 비롯한 노조, 상조회 가입 금지’, ‘관리자의 업무지시 외에 일반(청소, 출입통제)지시도 무조건 따를 것’, ‘운송 거부 시 손해배상액 우선 공제’ 등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각서를 강요하기도 한다. 결국 화물 노동자들은 불합리한 법제도와 운송회사의 탐욕 앞에 차량도, 인간다운 삶도 저당 잡힌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2003년 5월 전국을 뒤흔든 14일간의 전면파업을 통해 정부로부터 12개의 약속을 받아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대부분의 약속들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5대 요구 — 표준운임제, 노동기본권 보장, 차량과 번호판 재산권 보장, 직접운송의무제 폐지, 도로비 인하 — 를 실현할 법제도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3월 29일 화물연대 조합원 비상총회에서는 5대 요구안 실현과 법제도 개선을 위해서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할 예정이다.
상경 투쟁을 며칠 앞두고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 간에 열린 올해 첫 정례회의에서 국토교통부는 “다음 회의 때 진전된 안을 제시하겠다” 하고 말하며 회의를 마쳤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거듭 약속을 파기해 온 정부가 국회에 계류된 법제도 개선안 통과를 위한 진지한 노력도 없이 말로만 약속하는 것을 믿을 화물 노동자는 없다. 그래서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는’ 화물 노동자들의 진정한 힘을 통해서 빼앗긴 삶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되찾고자 투쟁을 결의하는 것이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삶까지 저당 잡혀 오늘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쪽잠을 자는 38만 화물 노동자 모두를 위한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