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거침없는 신자유주의 행보:
규제 완화가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까?
〈노동자 연대〉 구독
3월 20일 박근혜가 직접 주재한 ‘규제 개혁 끝장 토론’이 장장 4시간 동안 방송사와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생중계됐다. 각종 규제를 “암 덩어리”, “쳐부숴야 할 원수”라고 비난해 온 박근혜는 이번에는 규제를 “도둑질”, “죄악”이라고 지칭하며, 규제 철폐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청와대에서 한바탕 쇼가 벌어지자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들까지 나서 ‘규제 개혁 추진단’ 등을 만들며 박근혜를 거들기 시작했다. ‘끝장 토론’ 일주일 만에 박근혜 정부는 ‘끝장 토론’에서 언급된 규제 52건 중 41건을 올해 안에 철폐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완화하겠다는 41건의 규제를 살펴보면, 노골적인 대기업 지원 정책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부 자영업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려고 일반 화물자동차를 ‘푸드 트럭’으로 바꾸는 것 등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했지만 말이다.
41건 중 9건이 의료법인의 자법인 허용과 원격의료 허용, 의료기기 규제 완화 등 의료 민영화 관련 사항이다. ‘학교 주변 호텔 건설 허용’은 경복궁 옆에 7성급 호텔 건설을 추진해 온 대한항공의 숙원을 풀어 주겠다는 것이다. ‘주택 분양가 상한제 폐지’는 건설회사들이, ‘여수산업단지 공장 증설 허용’은 GS칼텍스, 한화케미칼, 여천NCC 같은 정유·화학회사들이 거듭 요구해 온 사안이다.
또, 박근혜 정부는 ‘불산 누출 사고’ 등 최근 빈번히 발생한 사고를 방지하려고 만든 ‘화학물질 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으로 기업 부담이 늘어난다는 불만이 이어지자 이를 줄여 주기로 했다. 근로시간 단축도 기업에 큰 부담이 가지 않도록 서서히 도입하겠다고 했고, 5인 미만 기업에서도 젊은이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청년인턴제’ 도입을 허용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미명 하에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시작한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확실하게 내팽개치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규제 개혁’을 내세우며 확실하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실패한 정책
박근혜가 이처럼 규제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세계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의 여파로 신흥국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우리 나라의 주요 수출 시장인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몇몇 중견기업들이 부도를 내면서 금융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반영해 박근혜는 ‘끝장 토론’에서 “우리 경제가 대도약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고,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절박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부총리 현오석도 “현재 많은 나라들이 경제 회복세를 성장 잠재력 제고로 굳히려는 데 중점을 두고 뛰고 있는데 우리에게 규제 개혁은 그런 측면에서 급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규제 철폐→기업 투자 확대→경제 성장→낙수 효과, 일자리 증대’라는 신자유주의적 신념에 따라 경제 위기에 대처하려고 규제 개혁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전봇대 뽑기’를 추진했지만, 한국 경제는 저성장을 면치 못했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아무리 규제를 완화해도 수익성이 높지 않으면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박근혜가 투자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지목한 외국인투자촉진법상 지분 제한 규정이 최근 풀렸다. 이 법의 개정 목적은 GS와 SK 같은 재벌들이 외국 석유회사들과 함께 투자해 계열사를 추가로 만드는 길을 열어 주려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GS특혜법’, ‘SK특혜법’이라고까지 불렸다.
그러나 GS칼텍스는 약속한 1조 원 규모의 공장 증설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 경제 침체 등으로 정유업계의 수익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국내총투자율은 27.5퍼센트로 전년 29.5퍼센트보다 2.0퍼센트포인트 낮아졌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저축을 하는 쪽으로 쏠렸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4퍼센트대였던 기업저축률은 2008년 경제 위기 후부터는 10퍼센트대 후반을 기록 중이다. 2011년에 19.3퍼센트, 2012년에 18.7퍼센트였다.
반면 노동자를 비롯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한국은행 조사를 보면, 국민총소득(GNI) 중 가계 몫은 2007년 63.5퍼센트에서 지난해 61.2퍼센트로 감소했다. 독일·미국·영국·프랑스가 모두 70퍼센트대이고, 2011년 기준 OECD 평균이 68.8퍼센트인 것에 견주면 훨씬 낮은 것이다. 같은 기간 한국 기업 몫은 21.9퍼센트에서 25.7퍼센트로 증가했다.
반발
자본주의 국가의 수장답게 박근혜는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기업을 후원해 위기를 돌파하려고 신자유주의적 규제 개혁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신자유주의적 규제 개혁이 박근혜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도권 규제 개혁을 두고 지배자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도 하고, ‘푸드트럭’ 허용도 기존 음식점 자영업자들이나 노점상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게다가 철도파업 등에서 드러났듯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노동자 투쟁은 대중적 반감의 초점 구실을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드라이브로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지배자들 내에서 갈등이 격화할 수 있고, 이는 다시 노동자 투쟁에 자신감을 높여 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의료 민영화, 통상임금 공격, 임금체계 개편 등을 신자유주의 규제 개혁의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에 맞선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고 발전시킬 때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