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산재, 이제는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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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현대중공업 내 드릴십(해상 플랜트 설치가 불가능한 심해 지역에서 원유를 찾아내는 선박 형태의 시추 설비)의 족장(높은 곳에서 공사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구조물)을 철거하던 선일ENG 소속 하청 노동자 3명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 임시 플랫폼이 무너져 바다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중 1명은 자력으로 헤엄쳐 나오고 1명은 동료가 구출했으나 고(故) 김종현 씨는 족장에 안전벨트를 맨 채 족장과 함께 추락해 끝내 운명을 달리했다.
안전 펜스 등 안전 시설물을 설치하지 않은 채 위험천만한 작업을 강행시킨 것도 용서할 수 없지만, 구조 과정을 보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사내 잠수부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1시간 넘게 구조를 지체해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했고, 사고 발생 1시간이 지나서야 119에 신고했다.
억울하고 어처구니없는 죽음에도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다. 뿐만 아니라 2012년 5월부터 하청노동자 3명이 연이어 목숨을 잃었고, 2014년에는 정규직 노동자 3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수도 없이 현대중공업 사측에게 책임과 철저한 사건 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부도, 검찰도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번 사고에서도 시설물 관리와 안전에 관한 감독·지휘권이 있는 현대중공업은 철저히 피해 나갔고, 사내하청업체인 선일ENG가 나서 협상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다.
반복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은폐
2014년 1월 현재 현대중공업에는 2만 7천 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이 세계 1등 조선소란 화려한 간판 뒤에서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산업재해 사례 분석 중 통계적 법칙)은 산업재해가 발생해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다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백 명에 달한다는 법칙이다. 단언컨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산재를 은폐하려 혈안인 현대중공업에서 드러나지 않은 사건·사고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2012년부터 현대중공업의 만연한 산재 은폐를 집단 고발하고 투쟁을 이어 왔다. 하지만 날로 지능화되고 교묘해지는 산재 은폐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또한 해고의 위협과 업체와 원청 부서의 압력은 하청노동자들의 산재 은폐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더구나 현대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의 수는 이미 고용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물량팀[10명 내외의 팀으로 구성돼 단기직으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2차 밴드[1차 하청업체에 인력을 파견하는 업체]를 통해 음성적으로 늘어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수를 감안하면, 산재 발생 위험은 갈수록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현대중공업이 저가 수주와 환율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고자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도급 단가를 삭감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하청업체 간의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안전과 노동조건은 더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산재 사망 사고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하청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노동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 철저한 원청 책임성 강화와 책임자 처벌, 기만적인 자율안전관리 제도의 즉각적인 폐지도 필요하다. 더불어 기형적 고용 형태인 물량팀 근절 방안도 함께 모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