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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수모를 겪은 미국:
만회할 기회를 찾으며 대북 압박을 강화하다

4월 하순 오바마의 한국·일본 순방을 앞두고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밝히자, 박근혜 정부 일각에서는 그동안 한·미·일이 북한에 요구해 온 비핵화 사전 조처의 이행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마도 이대로 가다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더 향상돼 북한 핵무기가 실전 배치 단계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즉, 상황 관리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이 핵실험까지 나아가지 않거나, 잠시나마 북핵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질서가 그대로 있고 한·미·일의 대북 압박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에는 언제든 긴장이 불거질 수 있다고 김영익 기자는 경고한다.

3월 28일 박근혜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른바 “드레스덴 선언”)을 내놓았다. 거기서 박근혜는 인도적 문제 해결, 인프라 구축 등 몇 가지 대북 제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싸늘했다. “낯간지러운 수작”이라는 원색적 용어까지 동원하며 드레스덴 선언을 비난했다.

북한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박근혜가 최근 북핵 문제에서 강경한 자세를 고수한 것과 관련이 있다. 드레스덴 선언에 앞서 박근혜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등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춰 북한 핵문제를 부각시키며 대북 압박과 제재를 촉구했다. 박근혜는 핵안보정상회의 개막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핵 개발을 비난하며 대북 제재의 국제 공조를 강조했다. 그리고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위협’론을 명분으로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일부 인도적 지원을 제외하면, 드레스덴 선언의 핵심 제안들은 여전히 북한의 선(先) 비핵화 조처와 결합돼 있다. 박근혜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핵을 버리는 결단을 한다면, 이에 상응하여 북한에게 필요한 국제금융기구 가입 및 국제투자 유치를 적극 지원하겠다.”

그러나 북한 지배 관료가 보기엔, 확실한 ‘보장’ 없이 핵무기부터 포기하라는 요구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설전

드레스덴 선언을 둘러싼 남북 간의 공방도 문제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이 여전히 북한과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최근의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 ‘위협’론은 미국에게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며 패권을 유지하는 유용한 수단이다. 이번에도 오바마 정부는 북한 ‘위협’론을 이용해 한·일 정상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 미국은 한·미·일 정상회담의 논의를 발판 삼아 MD(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3국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양해각서(MOU) 형태로 체결하려 한다. 한·일 군사협정 문제가 다시 부각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체면이 깎인 미국이 이를 만회할 기회를 찾는 것도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갈등을 키우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막지 못하자, 미국의 일부 동맹국들은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을 신뢰할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다. “크림반도 사태 이후 미국이 동·남중국해 충돌에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 나라들에도 확산되고 있다.”(〈도쿄신문〉)

이런 와중에, 4월 8일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 국방장관 척 헤이글이 중국 국방부장 창완취안과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였다. 척 헤이글은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과 일본이 충돌하면 미국은 일본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러 시비를 거는 듯한” 척 헤이글의 발언에 창완취안은 “영토 수호를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응수했다. 이 설전 과정에서 북한 문제도 거론됐다. 척 헤이글이 “중국이 도발적이고 위험한 북한을 계속 지지하며 스스로 국제적 지위를 훼손하고 있다”며 비난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자국 패권을 유지하려고 북한 ‘위협’론을 이리저리 휘두르자, 북한도 다시 반발하며 군사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북한은 2월 말부터 단거리 로켓과 미사일을 계속 발사했다. 이것은 B-52 전략폭격기까지 공개 동원한 대규모 한미 연합 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에 대응하는 성격이 컸다.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 직후에 북한은 노동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하기도 했다.

오바마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함께 북한의 노동미사일 발사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넘겨 규탄 성명이 나오게 했다. 그리고 3월 27일~4월 7일에 진행한 쌍용 훈련을 언론에 공개해 북한을 자극했다. 이 훈련은 미군과 한국군 1만 2천5백여 명과 최첨단 무기가 대거 투입된 연합 상륙 훈련인데, 1990년대 팀 스피리트 훈련 이후 최대 규모의 상륙 훈련이었다.

쌍용 훈련

포항에서 진행된 대규모 한미 연합 상륙훈련 “쌍용 훈련”. ⓒ사진 출처 국방부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북한도 더 강경한 군사 대응을 했다. 3월 30일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다종화된 핵억제력을 각이한 중장거리 목표들에 대하여 각이한 타격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훈련을 실시한 것이라 밝혔다. 그러면서 이 훈련을 미국이 걸고 넘어질 경우,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도 배제되지 않을” 4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3월 31일 북한은 서해 NLL 인근에서 대규모 해상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이 훈련은 쌍용 훈련에 대한 맞불 훈련의 성격이 컸다. 이때 남한군도 대응 사격에 나섰는데, 자칫 2010년 연평도 상호 포격 사태 때처럼 대규모 교전 사태로 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3차 핵실험 이후 불과 1년 만에 다시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언급되는 상황은 분명 우려스런 일이다. 명분이 뭐가 됐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지지할 수는 없다. 5살 미만 아동 중 28퍼센트가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막대한 자원을 군비에 쏟아붓는 것은 진정한 사회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핵무기는 남한·일본의 노동계급과 평범한 민중의 다수를 절멸시킬 대량살상무기이며, 그런 점에서 북한 핵무기는 제국주의에 맞선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간 갈등이 높아지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제국주의적 패권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후진 독재 국가인 북한을 ‘악마화’하고 이에 남한과 일본이 호응하면서, 한반도가 계속 불안정에 휩싸이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