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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반대 운동 방향 논쟁

파병 반대 운동 방향 논쟁

김하영

파병 반대 운동 내에는 “파병 철회 투쟁의 주된 방향각을 반미로 맞추자”(한총련)는 주장이 있다.
한총련 지도부는 ‘파병 철회 투쟁 지침’에서 “최근 국민적 분노가 무능력한 정부 당국으로 모아지고 있는데 여기에만 집중되다 보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미투쟁을 적극화하여 … 한미동맹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때, 파병은 철회될 수 있다.”
이런 주장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첫째, 미국의 압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한국 정부와 기업주들에 대한 공격이 부차화되는 것이다. 한총련은 “정부 당국을 규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와 동시에 “파병 철회 투쟁이 ‘노무현 퇴진’ 등의 구호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총련 지도부는 “이라크 파병 문제가 궁극적으로 예속적인 한미동맹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 지배자들 자신들은 원하지 않는데도 미국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병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파병 결정은 미국 제국주의에 협력함으로써 경제적·정치적으로 한몫 챙기려는 남한 지배자들의 염원을 반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규모 이라크 재건공사를 수주한 곳은 현대건설(2억2천만 달러)과 오무전기(6백만 달러) 정도이지만, SK건설이 1억 달러 규모의 바그다드 석유화학플랜트 입찰에 참가중이고 두산중공업도 전력부문 재건사업 수주에 힘을 쏟고 있다. 그 밖의 여러 대기업들이 수주를 추진하고 있고, “2천3백여 개 단위 프로젝트별 하청 방식의 중소기업 참여”도 예상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이라크 파병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2008년까지 10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방향각

기업주들은 이라크 재건사업 참여와 파병 사이의 연관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전경련은 “이라크 질서 회복과 민주화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향후 이라크의 경제 재건에 동참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노무현 정부에 파병을 촉구해 왔다. 실제로, 현대건설 부장 이태석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 현대 건설 수주에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파병 효과가 “이라크 특수”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한미동맹이 불안정에 빠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전경련은 2010년까지 한미 군사동맹의 경제적 가치가 50조 원에 이른다고 추산한 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국가는 세계 12위의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세계에 과시해 “국가 위상”을 높이고 싶어한다.
물론 노무현을 “미국 시민”이라고 비꼬는 것(한총련 홈페이지)은 미국에 대한 노무현의 굴종적 태도를 꼬집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 지배계급의 독자적 이해관계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한국 국가가 국경을 넘어 군사 개입을 하는 것은 미국의 하위 동맹으로서 미국 제국주의를 돕는 것인 동시에, 한국 지배자들의 이익이기도 하다. 노무현이 대변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이익이 아니라 기업주들을 포함한 한국 지배자들의 이익이며, 이것이 바로 “국익”론의 실체다.
노무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은 대중의 분노가 정부로 향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종종 미국의 압력을 부각시킨다.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정리해고와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할 때 한국 정부는 미국과 IMF 탓을 하며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한총련 지도부가 “예속적 한미관계”에 초점을 맞춘다면 노무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의 술책에 속아넘어가거나 뜻하지 않게 동조하는 꼴이 될 수 있다.
한총련 전술의 둘째 문제는,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에서 슬쩍 다른 쟁점으로 옮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한총련 지도부는 “파병 저지 투쟁[이] 예속적인 한미동맹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반미자주화투쟁”이라며 이를 “주한미군철수운동으로 철저히 지향시켜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의적 해석이자 논리의 비약이다. 파병 반대 운동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고, 이라크인들의 저항과 연대하기 위한 것이고, 이라크에서 외국 군대를 몰아내기 위한 것이지, 한국의 “자주”를 위한 운동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국제 연대의 기운 속에서 성장해 왔는데, 그것은 이 운동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 반대라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이 시작될 무렵 한총련 지도부는 매우 굼뜨게 움직였다. 한총련 지도부처럼 반제 투쟁에 열의가 있는 활동가들이 막상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국제적으로 일어났을 때 뒤처진 것이 사람들에게 의아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잘못된 제국주의 개념이 빚어 낸 문제였다. 즉, 그들은 제국주의를 미국과 한국의(또는 제국주의 국가와 종속국 사이의) 문제로, 반제 투쟁을 민족 자주 문제로 협소하게 본다. 그래서 반제 투쟁은 주로 한반도 문제(한미관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여긴다.

슬쩍

그 동안 한국 반전 운동 안에서 이라크가 초점이냐 한반도(전쟁 위협)가 초점이냐는 논쟁이 되풀이돼 왔던 것은 이런 이론적 문제와 맥이 닿는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고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전 시기와 바그다드 함락 뒤에 ‘반미 자주’ 경향의 활동가들은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바탕으로 반전 운동의 초점을 한반도로 이동시키려 헛되이 애썼다.
운동의 성장을 위해서는 겸허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2∼3년 동안 세계 정세의 핵심이 이라크였던 것은 명백하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다.
미국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울 여력이 없[었]다. 북한 핵 폐기에 “보상은 없다”던 미국이 최근에 자세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북의 대미 공세”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이라크 점령 상황의 악화로 말미암아 미국이 거기에 발목이 묶인 것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반제 투쟁 세력이 지금 집중해야 할 전선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보여 준다. 이라크는 체제의 모순과 불합리를 응축해서 보여 주고 있을 뿐 아니라, 바로 거기서 지금 미국 제국주의가 휘청거리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에서 패배한다면 한반도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미국의 개입 능력은 현저하게 약화될 것이다. 오늘날 이것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현실적 전망이다.
지금은 파병 반대 운동을 다른 쟁점으로 이동시키려 할 때가 아니다. 긴 눈으로 앞을 내다보며 반전 운동이 진정한 대중 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동자 대중이 반전 운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꾸준히 건설해 나가야 한다.
대중 투쟁이 일시적으로 가라앉는다 싶으면 소수의 ‘결의 높은’ 행동에 대한 유혹이 커질 수 있다. “간부의 투쟁이 대중의 폭발적 투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한총련)는 기대를 갖고 말이다. 기습 시위나 단식 같은 소수의 행동은 어떤 쟁점이 알려져 있지조차 않을 때는 의미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초점을 소수에게 집중시켜 대중 행동을 건설하는 데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거리의 투쟁은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할 수 있다. 그러나 반전 여론은 계속 유지되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라크 전쟁의 모순은 심화될 것이다. 8월에 기어이 한국군 파병이 단행된다 해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더 심각한 위기로 향하는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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