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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산재 피해자·반올림:
끈질긴 투쟁이 삼성의 사과를 받아내다

삼성전자 대표이사 권오현이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 반도체 산재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한 삼성의 공개·공식 사과는 처음이다.

삼성전자 측의 공식 사과는 일차적으로 산재 피해자, 가족들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들의 끈질긴 투쟁이 낳은 성과다. 지난 7년 동안 삼성은 산재가 개인 질병일 뿐이라며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고 버텼지만, 피해자들과 반올림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잘 보여 주듯,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가난한 노동자의 자녀들이 온갖 위험 물질에 방치된 채 밤낮없이 일하다 죽어 갔다. 삼성전자와 그 협력사에서 일하다 백혈병, 뇌종양 등 중증질환에 걸린 노동자가 1백93명, 사망자도 무려 73명이나 된다. 반올림에 제보된 숫자만 그렇다. 삼성전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희생 속에서 막대한 이윤을 쌓아 온 것이다.

삼성은 이에 대해 책임을 지기는커녕 피해자와 유족들을 회유·협박하고 이를 은폐하려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벌어지는 이 야만은 자본이 이윤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들의 생명 따위는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이번 사과는 삼성이 마땅히 했어야 할 최소한의 도리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은 산재인정소송에 개입해 왔던 것을 철회하고, 보상을 포함해 재발방지대책도 수립하겠다고 했다. 사과, 보상,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유족들과 반올림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이 진정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라면 즉각 반올림과의 교섭에 나서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기 결정권

그동안 삼성은 ‘제3자’라며 반올림과의 교섭을 거부해 왔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반올림과의 교섭이 아니라 반올림을 배제한 제3자 중재기구를 통해 보상의 범위와 기준을 정하면 이에 따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당사자들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피해자들을 모아 투쟁해 온 반올림은 결코 제3자가 될 수 없다.

애초 심상정 의원실이 반올림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삼성에 제3자 중재기구를 제안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삼성에게 반올림과의 교섭을 회피하고 보상만으로 문제를 협소하게 하는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가 제3자 중재기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는 또 하나의 논쟁거리만 만들게 될 공산이 크다.

삼성의 이번 발표에는 이건희의 와병과 이재용 등 3대로 이어지는 경영권 세습 과정에서 최대한 사회적 반감을 줄여 보려는 저들의 의도도 숨어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을 경시하는 정부와 자본에 대한 규탄 분위기도 염려가 됐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발표가 단지 현재 상황을 모면해 보려는 꼼수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 실행으로 이어지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난 7년간 피눈물을 삼키며 싸워 삼성 반도체 산재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온 피해자들과 반올림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수만에 이르는 반도체 노동자들이 더는 죽음의 공장에서 희생당하지 않도록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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