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의료 민영화:
건강보험공단이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올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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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종대가 자기 블로그에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안’(이하 개편안)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개편안은 박근혜 정부가 취임 직후부터 준비해 온 것이다.(▶ 본지 117호 ‘건강보험료 인상 계획 중단하라’를 참고하시오.)
기존에는 가입 유형에 따라 보험료 부과 기준이 달랐다. 예컨대 임금노동자는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정해졌다. 소득이 투명하게 파악되지 않는 사람들은 주택, 자동차 등 자산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정해졌다.
개편안은 이처럼 각기 다른 기준을 ‘소득’으로 일원화하겠다고 한다. 근로소득뿐 아니라 사업소득, 금융소득, 연금, 기타소득, 일용 근로소득에 모두 일정 비율의 보험료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파렴치한 부자들은 허술한 보험료 책정 방식을 이용해 재산이 많으면서도 근로소득이 적다는 이유로 보험료를 적게 내 왔다. 예를 들어, 이명박은 2000~02년에 재산이 수백억 원이었는데도 중소기업 직원으로 거짓 등록해 보험료를 1~2만 원밖에 안 냈다. 이런 자들의 소득과 재산에 보험료를 물려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게다가 소득 대비 보험료 비율로 보면, ‘유리지갑’인 노동자들이 부자들보다 보험료를 더 많이 낸다.
그러나 개편안이 이런 현실을 개선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부담이 커질 공산이 크다. 특히 어지간한 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험료가 크게 오를 것이다.
김종대는 노동자에 견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며 노동자의 보험료를 높여야 한다고 시사한다.
노동자 보험료 인상
그러나 첫째, 노동자들이 지역가입자보다 보험료를 적게 내는 것은 노동자 보험료의 절반을 사측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임금의 일부다.
둘째, 지역가입자의 부담이 큰 진정한 이유는 정부가 법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지역건강보험이 도입된 1988년에 정부는 지역가입자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기로 했다. 건강보험이 통합된 2000년에는 전체 재정의 20퍼센트를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대신 그 부담을 직장가입자들에게 떠넘겼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정부가 미지원한 금액이 같은 기간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사후정산액 8조 5천7백57억 원과 맞먹는 규모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올리자는 것은 도둑이 몽둥이 드는 격이다.
게다가 개편안은 보험료 상한선을 높이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한 부자들의 부담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공무원·교사가 퇴직 후 받는 연금에는 보험료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컨대, 개편안은 노동계급 내 소득 격차를 쥐꼬리만큼 줄이는 대신 계급간 양극화는 더욱 키울 것이다.
따라서 개편안을 지지할 수는 없다.
한편, 정부는 6월부터 건강보험료 체납자에 대한 진료를 제한하려 한다. 지금까지는 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해도 일단 진료는 받을 수 있었다. 이 비용은 나중에 공단이 자체 해결하거나 체납자에게 추징해 해결했다. 그런데 이제 병원이 환자의 보험료 납부 상태를 조회해 처음부터 진료를 거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조처들이 도입되면 장차 건강보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 민간보험사, 병원, 자본가들은 이런 불만을 기반으로 건강보험을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건강보험 개악은 또 다른 의료 민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