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노동자 투쟁:
노동자들이 나서야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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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건설 노동자들의 안타까움과 아픔은 더욱 각별하다. 매년 7백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건설 현장과 수백 명의 목숨을 끌어안고 가라앉은 세월호의 모습이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고 건설산업연맹 소속 노동자들은 7월 1일 ‘확대간부 및 열성 조합원 상경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7월 22일 조합원 수만 명이 상경하는 파업 투쟁도 준비하고 있다. 전국건설노조의 박종국 노동안전국장을 만나 건설 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어 봤다.
건설회사는 1년에 몇 천억씩 벌어들이면서도 안전을 위한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안전을 위한 투자보다 벌금이 훨씬 돈이 적게 들기 때문이죠. 해마다 건설노동자 7백여 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지만, 사업주는 고작 벌금 3백~4백만 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요. 원청회사들은 그나마 벌금조차도 하청업체에 떠넘깁니다.
몇 년 전 삼성중공업이 수주한 미국의 공항건설 현장에서 노동자 1명이 추락해서 목숨을 잃었어요. 현장조사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수도 없이 위반해서 벌금 69억 원을 냈죠. 이건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또, 모든 공공 공사에서는 설계가에 장비에 대한 산재보험료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건설회사들은 정작 장비운전자(건설기계노동자)들의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현장에 신호수가 없어 건설기계노동자가 장비를 후진시키다가 사람을 다치게 하면, 오히려 ‘구상권’이 청구돼 배상금을 물어야 해요. 신호수를 배치하지 않은 책임은 비용을 줄이려 한 건설회사에 있는데, 배상은 특수고용노동자인 건설기계노동자에게 떠넘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산재사고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기업살인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이윤을 위해 노동자 안전을 내팽개치는 범죄 행위에 징벌적 배상을 물려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처벌강화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한국의 건설현장은 기본적인 안전조처를 취해 놓아도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원청회사는 하청업체와 물량계약을 합니다. 예를 들면 아파트 한 동을 짓는데 ‘목수 얼마’, ‘철근 얼마’ 이렇게 금액을 책정하고 최저가를 제시하는 하청업체에게 공사를 맡기죠. 그나마도 건설경기 부진과 불법 다단계 하청 때문에 ‘덤핑계약’이 빈번합니다.
‘덤핑 계약’의 피해는 고스란히 건설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집니다. 하청업체들은 ‘덤핑’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고자 안전관리비를 최저가로 산정하고, 온종일 노동자들을 닦달해요. 대부분의 건설노동자들이 일출, 일몰에 따른 10시간~12시간 노동을 강요받고, 휴일도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피로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 ‘독촉’은 건설노동자들을 매 순간 사고의 위험으로 내몹니다. 그런데도 건설회사들은 적반하장으로 노동자들이 ‘빨리 하려고 안전조처를 위반해서 사고가 난다’며 책임을 떠넘깁니다.
노후 시설을 교체하지 않거나 값싸고 덜 안전한 공사자재를 쓰는 것도 위험 증가 요인입니다. 예컨대 건설플랜트 현장에서 유해가스가 노출돼 폭발, 질식, 화재 사고가 빈번해요.
값싸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우레탄폼, 샌드위치 판넬 같은 자재를 공사용으로 많이 써요. 그런데 이런 자재는 화재 시 불연성이 약하고 유독가스를 내뿜어 위험을 가중시킵니다. 얼마 전 화재사건이 일어난 고양터미널과 장성 요양원도 이런 자재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질식사했죠. 반면에 5월 말 도곡역 지하철 방화사건은 전동차 내장재가 불연소재로 돼 있어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다중 이용시설은 친환경, 불연소재 사용을 의무화한다면 훨씬 안전해질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기업들은 현장에 일명 ‘패트롤점검단’이라고 하는 감시인원과 CCTV를 대거 늘렸습니다. ‘모든 사고는 노동자들이 안전을 소홀히 해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고에 비롯된 조처이죠. 그러나 이런 천박한 인식으로는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 수 없습니다.
올해 초 경주리조트 붕괴 사고를 돌아보면, 이미 인허가 과정에서부터 편법이 사용됐습니다. 무리한 구조변경, 함량 미달 자재, 시설대피훈련도 제대로 안 된 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원인은 폭설이 아니었어요.
따라서 현장 곳곳의 위험 요소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즉시 반영해야 참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같은 노사협의체를 구성해서 공사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안전문제에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 언론에 기고한 글에 ‘노동의 위기가 사회안전의 위기’라는 제목을 달았어요. 산업 현장의 안전이 지켜지지 않으면, 구미불산가스 유출사건처럼 시민들의 생명도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노조 삼성의 노동자가 위험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늘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건설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초과노동이나 현장의 위험요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요? 노동자들의 힘이 더 강해져야 합니다. 조직돼 있는 노동조합이 안전문제에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