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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허영과 자만으로 이끄는 세속적인 부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화려하고, 보수적인 행보를 보인 이전 교황들과 구분되는 그의 검박한 태도는 교황을 향한 관심을 높인 주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이게도 가톨릭 교회의 부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하다. 로마 교황청은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큰 투자자 중 하나다. 2012년에는 ‘바티칸 리크스’ 스캔들이 터지며 교황청의 뇌물 수수와 비리, 돈세탁 등이 폭로되기도 했다. “아무도 하느님과 마몬(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예수의 말이 무색해진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주된 이유도 이와 관계 있다.

가톨릭 교회가 드러내는 모순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다른 종교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독재 정권을 비호했다. 비오 12세 교황은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지지했다. ‘해방신학’을 비난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요셉 라찡어 추기경(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됨)은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라틴아메리카 예수회 지도자들을 비롯한 사제 수백 명을 해임 또는 면직시켰다. 포르투갈, 스페인, 필리핀 등지에서도 가톨릭 교회 고위 사제들은 독재정권에 침묵·협조했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대주교(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적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독재 정부가 예수회 신부 두 명이 빈민가 속에서 하는 일이 수상하다며 납치·고문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베르고글리오 대주교가 이들의 체포를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황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는 국가와의 갈등을 기피하면서 빈민 구호와 자선에는 의욕적이었던 가부장적인 가톨릭 온정주의 전통을 지켜 온 사제였던 듯하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또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의 일부이기도 했다.

계급 불평등과 제국주의로 고통받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해방신학 운동이 일어나 많은 사제들의 지지를 얻었고, 이들은 해방과 사회 정의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피억압자·피착취자 투쟁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한국에서도 정의구현사제단의 가톨릭 신부들은 군부 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의 일부였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용기 있게 폭로한 것도 가톨릭 교회였다. 지학순 주교, 김승훈 신부 등이 불의에 맞선 양심적 종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나의 종교, 다른 실천

가톨릭 교회뿐 아니라 일반으로 종교는 어떤 사회적 맥락·관계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이슬람은 중동 독재 정부의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민중의 정치적 신념이기도 하다.

이런 종교의 ‘두 얼굴’은 종교를 역사유물론으로 분석할 때 이해할 수 있다. 역사유물론은 관념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관념을 만든다고 본다. 종교의 호소력 또한 인간의 물질적 세계와 사회적 맥락에서 비롯한다. 종교는 마르크스가 소외라고 표현한 것 ─ 불평등, 착취 등 개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억압적 상황 ─ 때문에 존재한다. 즉, 다른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종교는 사회적·역사적 산물이다.

마르크스는 종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현실의 고통을 표현할 뿐 아니라 현실의 고통에 항의하기도 한다. 종교는 천대받는 피조물의 한숨이고,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영혼 없는 세계의 영혼이다.” 오늘날에도 억압·천대받는 사람들이 ‘절대적 힘’에 의지하며 종교를 안식처로 삼으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종교의 형태·규모와 기능은 다양하고, 그것은 항상 구체적 사회 조건에 달려 있다. 종교는 지배계급의 지배를 ‘신의 뜻’으로 정당화하기도 하는 반면,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대중의 염원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저항을 정당화하는 구실도 한다.

지난 30년 넘게 지속된 신자유주의 공세로 대중의 삶은 더 고통스러워졌다. 교황의 자본주의 비판 발언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시대 현실을 분석하는 것은 사실 교황의 책무가 아니지만, 돌이킬 수 없는 비인간성의 시대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이는 우리 모두의 중요한 책무”라고 말했다.

역사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가 그러한 현실 분석과 사회 변화의 효과적 전략을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는 신앙인들과 함께 투쟁함으로써 이것을 현실에서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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