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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생략한 한국 천주교회의 교황 방한 계획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4일 방한한다. 그런데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방준위)가 방한 일정을 발표하자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스타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추대 후, 교회 쇄신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이전 교황들과는 다른 프란치스코의 파격 행보 때문이다.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가난한 사람들의 성자로 알려진 ‘프란치스코’를 최초로 교황명으로 택했다. 그는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며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현 시대에 맞게 고쳐 말하면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교회는 필요하다면 신발에 거리의 진흙을 묻힐 수도 있어야 한다”며 가톨릭 교회의 사회 참여에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교황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만 발행 한 달 만에 2만 5천 부가 판매됐다. 지난달에는 진보적 신학자이자 감리교신학대 총장인 박종천 목사의 제안으로 《복음의 기쁨》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교황에 대한 관심과 그 파장이 교파의 경계를 넘어서 뜨겁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월스트리트 등 “새로운 독재”에서 득을 보는 자들은 “교황의 주장은 공산주의”라고 터무니없는 말로 공격한다.

교황 방한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독재’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과 교황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6월 23일 방한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총장 마리오 토소 주교가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침해당한 노동자는 저항할 권리가 있고 가톨릭 교회는 노동자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 사회교리 입장”이라고 말해 이러한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진보적 가톨릭 단체들도 교황이 청와대가 아니라 해고 노동자들과 밀양, 강정의 주민을 만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실제로, 중동 방문 때 교황은 요르단 국왕과의 만찬 대신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이 있는 교회를 방문한 바 있다.

절연체

그러나 발표된 방한 계획을 보면, ‘새로운 독재’를 위해 규제를 더 풀어 주려는 박근혜와의 만남, 장애인들을 사회와 격리시킨다는 비난을 받아 온 장애인 수용 시설 꽃동네 방문이 주요 일정으로 잡혀 있다. 여기에는 한국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성향이 반영된 듯하다.

한국의 두 추기경은 보수적 성향으로 유명하다. 정진석 추기경은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두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한 게 아니라 자연 파괴와 난개발의 위험을 극복해 4대강을 개발하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며 사실상 4대강 사업을 옹호했다. 뿐만 아니라 안중근을 살인자라 비난하고 3·1운동에 참가한 신학도들을 퇴학시킨 조선 가톨릭교구장 뮈텔을 두둔했다. 지난해에는 국가기관 불법 대선 개입에 항의해 박근혜 퇴진 요구 시국선언을 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게 “거짓 예언자”(!)라고 비난했다. 염수정 추기경도 같은 시기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비이성적”이라고 비난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김용철 변호사를 도와 삼성 비리 폭로에 앞장서고 용산 참사, 쌍용차 해고 노동자 투쟁,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 등 저항하는 사람들과 함께해 온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진정한 비이성적 거짓 예언자들은 두 추기경 아닐까?

오죽하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는 두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사회 사이에서 “절연체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20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진보적 신부 이브 콩가르의 지론이었다)를 표방한다. 그러나 정작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방한 중 계획에서 빠져 있다. 방준위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정의를 강조하고 불평등을 비판해 온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듯하다. 철도노조가 교황 방한에 즈음해 파업을 포함한 투쟁 계획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도 있다. 만일 이 시기에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다면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교황은 “돈이라는 우상을 중심에 놓는 경제 체제가 비극을 불러온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을 막거나 줄이고자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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