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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흥미롭지만 비뚤어진 눈으로 풀이된 체험들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영국 외교관이었던 존 에버라드는 2006~08년 영국대사로 평양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 책은 에버라드의 북한 체류기이다. 에버라드 같은 사람이 최근의 북한 사회 내부를 오랫동안 보고 기록을 남긴 것은 흔치 않기 때문에, 책 곳곳에 눈길을 끄는 체험과 목격담이 있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성격, 북한이 위기에 처한 까닭 등을 다룰 때는 상당히 동의하기 힘든 주장을 편다.

오랜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비록 1990년대 중·후반의 최악의 경제난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북한은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식량, 의료, 난방 연료 등 필수적인 것들이 부족해 고통받고 있다.

“평양 일대[의] 단층 주택들은 주로 연탄 난로를 썼다. …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고 어느 집에서 난방을 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엄동설한에 지붕들을 빙 둘러보아도 연기가 나오는 굴뚝이 하나도 없을 때가 많았다.” (30쪽)

“평양 외부의 많은 병원들은 의사와 간호사의 온정 말고는 제공할 것이 거의 없어 보였다. 약도 장비도 없었고, 식염수도 부족해, 흔히 빈 맥주병에 담긴 식염수를 환자가 직접 마련해야 했다.” (73~74쪽)

계급과 빈부격차

아무리 북한 당국이 정보를 통제하고 북한 사회는 계급이 없는 사회주의라고 선전해도 명백한 빈부격차와 계급 분할을 숨길 수 없다.

북한에는 상당한 부와 특권을 누리는 소수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평양 정중앙의 폐쇄된 지역에 있는 엘리트층의 특별 거주 지역” 등에 살아, 거주 지역에서도 평범한 사람들과 구별된다.

평소에 집단농장에 사는 농장원들은 소달구지를 타고, 평양의 평범한 주민들은 출퇴근 때 이용하는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가 단전으로 갑자기 멈추는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반면에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이런 불편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다. 엘리트층은 안락하고 빠르고 창문을 선팅한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원산 근처 도로에서 내 차를 따라오는 재규어를 본 적도 있다.” (29쪽)

에버라드는 평양에서 본 한 인상적인 경험을 기록했다. “통일시장 뒤편 주차장에 멈춘 차에서 부유한 여자들이 내린 뒤, 시장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은 꿈꿀 수 없는 액수의 돈을 소비하고 나서, 불룩한 장바구니를 들고 차로 돌아가는 모습을 평범한 북한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 부자들을 쳐다보는 서민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지만 그들이 부유한 여자들의 사치스러운 핸드백과 값비싼 신발을 보고 자신의 초라한 차림을 비교했을 때, 과연 사회주의적 낙원의 약속을 믿었을지 나는 의문이다.” (101쪽)

평양에는 외화로 거래하는 상점들이 있다. 여기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사치품들을 판매한다. 그리고 일부 북한 사람들의 2주일치 급여에 해당하는 가격의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들도 있다. 이런 카페에는 “좋은 옷을 입은 멋쟁이 손님들이 앉아” 있는데, 에버라드는 이런 모습에서 소련이 붕괴한 직후 벨라루스에서 본 부유한 신흥 계급이 연상된다고 했다.

그래서 평양의 엘리트들은 대중이 불만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

“지인들은 자기네가 특권층이고 그 특권이 분노를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북부의 어느 도시에 갔다가 돌아온 친구는 자신의 세련된 억양을 듣자마자 그곳 사람들이 자신을 노려보았고, 들으라는 듯 버르장머리 없는 평양 애새끼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주었다.” (133쪽)

북한은 “빅 브라더” 사회인가

많은 사람들이 북한 사회는 개인의 삶과 사고가 모두 당국에 의해 철저히 통제받는 사회라 생각한다. 물론 북한 당국은 대중의 불만이 확산되거나 저항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려 애쓴다.

그러나 북한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온 “빅 브라더” 사회가 아니다.

“북한 당국은 매체를 통하지 않는 정보 흐름을 통제하는 데는 훨씬 애를 먹는 듯했다. 입에서 입으로 정보를 전하는 방식은 깜짝 놀랄 만큼 효율적이었[다.] … 2007년과 2008년 내내 경제 상황에 먹구름이 끼고 있을 때, 지인들은 지방의 실상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고 있었다.”(97쪽)

북한 당국은 주민의 지역 이동을 통제하려 해 왔다. 그러나 이는 점점 어려운 일이 돼 가고 있다. “농장원들이 멀리 떨어진 장마당에서 판매하기 위해 식량 꾸러미를 도보나 자전거로 운반하는 모습을 북한 전역에서 볼 수 있었다.” (123쪽)

에버라드는 주민들이 당국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불복종”의 사례로 “개구리 장마당(비공인 시장)”을 든다. 그는 어느 날 경찰이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여성들을 단속하는 모습을 봤다. 경찰은 욕설을 하며 그들을 거리에서 쫓아냈지만, 여성들은 곧바로 도로 건너편에서 다시 좌판을 벌였다. 경찰이 쫓아가 더 크게 고함을 질렀지만, 여성들이 장사하는 것을 끝내 막거나 체포하지 못했다.

북한은 서구보다 못한 사회?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지만, 이 책에는 명백한 약점들도 많이 있다.

예컨대 그는 북한 통치 체제를 조선 시대의 전통과 스탈린주의의 결합쯤으로 규정한다. 김일성의 개인 숭배는 스탈린식 개인 숭배와 조선 시대 통치자의 전통이 결합한 결과물이라 하거나, 북한의 정교한 주민 분류 체계나 노동수용소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설명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북한을 “비정상 국가” 또는 일종의 봉건 왕조라고 하는데, 이런 성격 규정은 모두 북한이 서방 자본주의보다 질적으로 열등한 사회라는 함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세습 독재와 끔찍한 억압은 근대적 착취와 관계가 있다. 북한 관료는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했다. 대중의 소비와 생활수준은 철저히 희생됐다. 이것은 사회주의적 조처가 아니라 당시 여느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추진하던 강력한 국가 주도 경제 발전 노선이었다. 이런 사회는 서방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 자본주의의 한 변형, 즉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일 뿐이다.

높은 착취율을 유지하려면 강도 높은 억압이 필요했다. 따라서 주민의 성분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것이나 강제수용소의 존재는 전근대적 지배가 아니라 근대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했다.

북한 사회가 서방 사회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독특한 성격의 사회라는 이런 관점에서는 북한 변화의 전망을 시장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 보게 되고, 또 북한 체제의 내적 모순과 변화의 동력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북한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볼 때, 시장 자본주의로의 옆걸음질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북한 노동계급이 지배 관료를 타도하고 자기 자신의 민주적 국가 기구들을 세우는 것을 지지할 수 있게 된다.

미국과 그 동맹국 정부들은 책임이 없나?

북한 관료들은 축적을 위한 축적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이는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외부의 경쟁 압력에 노출돼 있었다. 특히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한과 군사적 경쟁을 벌였는데, 이것이 북한 경제의 작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은 북한이 받는 이 압력과 영향력을 증폭시켰다.

따라서 에버라드가 북한 핵무기 문제에서 사실상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일부 자유주의 언론들이 이 책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한 것은 아쉽다.)

오늘날 북한이 해마다 식량원조를 받으면서도 핵무기를 실험하는 국가가 된 데는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 정부에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