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흥미롭지만 비뚤어진 눈으로 풀이된 체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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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외교관이었던 존 에버라드는 2006~08년 영국대사로 평양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 책은 에버라드의 북한 체류기이다. 에버라드 같은 사람이 최근의 북한 사회 내부를 오랫동안 보고 기록을 남긴 것은 흔치 않기 때문에, 책 곳곳에 눈길을 끄는 체험과 목격담이 있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성격, 북한이 위기에 처한 까닭 등을 다룰 때는 상당히 동의하기 힘든 주장을 편다.
오랜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비록 1990년대 중
계급과 빈부격차
아무리 북한 당국이 정보를 통제하고 북한 사회는 계급이 없는 사회주의라고 선전해도 명백한 빈부격차와 계급 분할을 숨길 수 없다.
북한에는 상당한 부와 특권을 누리는 소수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집단농장에 사는 농장원들은 소달구지를 타고, 평양의 평범한 주민들은 출퇴근 때 이용하는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가 단전으로 갑자기 멈추는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반면에
에버라드는 평양에서 본 한 인상적인 경험을 기록했다.
평양에는 외화로 거래하는 상점들이 있다. 여기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사치품들을 판매한다. 그리고 일부 북한 사람들의 2주일치 급여에 해당하는 가격의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들도 있다. 이런 카페에는
그래서 평양의 엘리트들은 대중이 불만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
북한은 “빅 브라더” 사회인가
많은 사람들이 북한 사회는 개인의 삶과 사고가 모두 당국에 의해 철저히 통제받는 사회라 생각한다. 물론 북한 당국은 대중의 불만이 확산되거나 저항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려 애쓴다.
그러나 북한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온
북한 당국은 주민의 지역 이동을 통제하려 해 왔다. 그러나 이는 점점 어려운 일이 돼 가고 있다.
에버라드는 주민들이 당국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북한은 서구보다 못한 사회?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지만, 이 책에는 명백한 약점들도 많이 있다.
예컨대 그는 북한 통치 체제를 조선 시대의 전통과 스탈린주의의 결합쯤으로 규정한다. 김일성의 개인 숭배는 스탈린식 개인 숭배와 조선 시대 통치자의 전통이 결합한 결과물이라 하거나, 북한의 정교한 주민 분류 체계나 노동수용소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설명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설명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북한을
그러나 북한의 세습 독재와 끔찍한 억압은 근대적 착취와 관계가 있다. 북한 관료는 한국전쟁 이후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했다. 대중의 소비와 생활수준은 철저히 희생됐다. 이것은 사회주의적 조처가 아니라 당시 여느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추진하던 강력한 국가 주도 경제 발전 노선이었다. 이런 사회는 서방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 자본주의의 한 변형, 즉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일 뿐이다.
높은 착취율을 유지하려면 강도 높은 억압이 필요했다. 따라서 주민의 성분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것이나 강제수용소의 존재는 전근대적 지배가 아니라 근대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했다.
북한 사회가 서방 사회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독특한 성격의 사회라는 이런 관점에서는 북한 변화의 전망을 시장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 보게 되고, 또 북한 체제의 내적 모순과 변화의 동력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북한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볼 때, 시장 자본주의로의 옆걸음질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북한 노동계급이 지배 관료를 타도하고 자기 자신의 민주적 국가 기구들을 세우는 것을 지지할 수 있게 된다.
미국과 그 동맹국 정부들은 책임이 없나?
북한 관료들은 축적을 위한 축적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이는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외부의 경쟁 압력에 노출돼 있었다. 특히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한과 군사적 경쟁을 벌였는데, 이것이 북한 경제의 작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은 북한이 받는 이 압력과 영향력을 증폭시켰다.
따라서 에버라드가 북한 핵무기 문제에서 사실상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늘날 북한이 해마다 식량원조를 받으면서도 핵무기를 실험하는 국가가 된 데는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국 정부에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