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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주류 경제학에 대한 쓸 만한 비판, 그러나 어정쩡한 대안

《나쁜 사마리아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해 온 장하준 교수가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라는 경제학 입문서를 냈다. 이 책에서 장교수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부터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1부 ‘경제학에 익숙해지기’에서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훑는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학파, 행동주의 학파, 고전주의 학파, 개발주의 전통, 제도학파, 케인스학파, 마르크스 학파, 신고전주의 학파, 슘페터 학파 등 9개 학파에 대해 소개한다.

2부 ‘경제학 사용하기’에서는 생산량, 행복, 생산, 금융, 불평등과 빈곤, 실업, 정부의 역할, 국제 무역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경제 이론들을 실제 경제에 적용하며 어떻게 사용할지를 보여 준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유용성은 주류 경제학 비판에 있다. 장 교수 스스로 “내용은 쉽고 말투는 순하지만 내 책 중 가장 래디컬하다”고 평했는데, 이 책은 여러 경제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부추긴 주류 경제학의 사고 구조와 문제점을 파헤친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까지도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시장은 실패가 없고, 그나마 존재하는 사소한 결함은 현대 경제학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설파했었다. …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경제학은 심각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25쪽)

장 교수는 “’이종교배’를 통해 다양성을 의식적으로 보존하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만, 지난 30년 가까이 경제학의 유일한 주류 이론으로 군림해 온 신고전파 경제학을 9개 경제 이론 중 1개로 소개한 것 자체가 신고전파 경제학을 비판한 셈이다.

기본적으로, 장 교수는 경제 주체를 ‘이기적이고 합리적 경제인’으로 가정하는 신고전파에 반대한다. 현실의 인간은 그렇게 ‘초’합리적이지 않으며, 이기적인 것만도 아니고, 사회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직장 문 앞에서 끝난다”고도 장 교수는 비판하는데, 신고전파가 경제를 교환 관계로만 보며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생산에 무관심한 것을 질타한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입구에 쓰인 은밀한 생산의 장소”로 들어가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2부에서 제시하는 생산량, 빈곤, 실업, 노동시간 등의 관한 수치들은 그 자체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유용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유용한 비판을 여럿 제시해 그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취약한 가정 위에 있는지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책은 기대한 것만큼의 급진성이나 통렬함은 보여 주지 못하는 듯하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신선함도 훨씬 덜할 것이다.

장 교수가 ‘경제학의 이종교배’를 주장하며 신고전파 경제학의 유용성을 인정한 점이 비판의 통렬함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한다.

약점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경제 위기의 원인을 별도의 장으로 떼어 내어 좀 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데서 두드러진다. 저자가 한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존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커진 것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고 말한 바 있고,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최대 위기라는 이번 경제 위기가 각 경제 이론을 중요한 시험대에 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 위기 자체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은 이 책의 큰 약점이다.

예를 들어, 장 교수는 마르크스주의를 설명하면서 경쟁적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가 그 모순 때문에 붕괴한다고 봤다고 간략히 요약하는 데 그칠 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서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또, 케인스주의 부분에서는 투자의 부족에 따른 ‘과잉 저축’이 유효수요 부족을 낳아 실업과 경제 위기를 낳는다는 점을 요약하지만, 이를 이번 위기를 설명하는 데는 적용하지 않는다.

장 교수는 금융을 다루면서 경제 위기의 원인을 간략히 설명하는데, 신자유주의 시대에 ‘주주 이익 극대화’ 모델 때문에 기업들이 이윤을 배당으로 분배해 버려서 “기업들의 투자 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는 투자의 부족이 과잉 저축과 금융 팽창을 낳는다는 케인스주의나 마르크스주의와 정반대의 설명이다.

현실은 장 교수의 설명보다 마르크스주의가 더 잘 들어맞는다. 장 교수는 기업들이 투자할 돈이 없을 정도로 배당해 버렸다고 보지만, 실제로 전 세계 다국적 기업들은 수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 둔 채 투자를 회피해 왔다. 이윤율이 떨어져 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것이다.

장 교수가 경제 위기의 원인에 대해 취약하고 무관심한 것은 그가 국가의 정책 변화를 통해 경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개발주의 경제학에 친화적이고, 따라서 1980년 이전에 일반적이었던 정부 개입적 ‘혼합경제’로 돌아가는 것을 대안으로 본다.

이런 약점 때문에 경제사를 요약한 부분에서도 전 세계 주요 정부들이 ‘혼합경제’를 포기하고 신자유주의로 돌아서게 된 이유를 장 교수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1970년대 말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며 성장률이 떨어져 신자유주의로 급격하게 바뀌었다고 간략하게 설명할 뿐이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호황이 왜 성장률 하락으로 끝났는가 하는 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만 올바른 대안도 내놓을 수 있다. 1970년대 성장률 하락은 많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 밝혔듯이 이윤율 하락 때문이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위기가 자본주의에 내재한 이윤율 저하 경향 때문이라면 그 대안으로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사회 변화가 필요하게 된다.

장 교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근본적인 사회 변화 없이 가능한 선택만 고려하게 된다”고 비판하는데, 우리는 이런 비판을 고스란히 장 교수에게 돌릴 수 있다.

결국, 어정쩡한 대안에서 비롯한 무딘 비판이 이 책의 약점이다. 영국 마르크스주의자인 고(故) 크리스 하먼의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책갈피)를 함께 읽으면 비판의 칼날을 벼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

크리스 하먼 지음

이정구 옮김|128쪽|4,900원|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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