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계 이주민 민수 씨의 귀화 불허 취소 소송 패소:
법원이 차별적인 귀화 불허를 정당화해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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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국적의 티베트인 라마 다와 파상(한국명 민수)이 법무부의 부당한 귀화 불허에 맞서 제기한 귀화 불허 취소 소송에서 법원이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이승택)는 법무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이런 판결을 내렸다.
1998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와 15년 넘게 살아온 민수 씨는 현재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해 자녀 3명까지 두고 있는 가장이다. 이번 판결로 그는 여전히 ‘외국인’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법원은 민수 씨의 미등록 체류 사실을 문제 삼았다. “출입국관리에 관한 국가의 질서유지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며 엄청난 범죄라도 저지른 양 호들갑을 떨었다. 그가 한국에서 겪은 온갖 차별과 고통, 억울한 사연을 ‘불법 체류’ 한마디에 모두 덮어버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등록 체류는 절도나 강도 같은 범죄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기업주들은 이주민의 노동을 통해 이득을 취했다. 제조업 수출 산업의 가장 밑바닥 하청 공장부터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축산·어업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에 기여해 온 사람들이 바로 이주민이다.
그럼에도 이주민은 끔찍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고 있다. 민수 씨도 한국에 들어온 후 오랫동안 노동자로 일하며 인격적인 무시와 폭행,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임금 체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불법 체류’는 단속하면서도 사용자들의 훨씬 심각한 불법은 단속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민수 씨가 미등록 체류에 따른 벌금을 모두 납부했음에도 다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명백한 이중처벌이다. 민수 씨가 벌금 납부 영수증까지 제출했음에도 법원은 “(벌금 납부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도 없”다며 ‘눈 뜬 장님’과 다름없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민수 씨가 5백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것이 국적법상 귀화 요건 중 하나인 ‘품행 단정’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법무부의 주장도 고스란히 반복했다. 그러나 민수 씨가 받은 벌금형은 그가 운영하던 티베트 음식점이 재개발 사업으로 강제 철거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받은 것이다.
법원은 “상당한 기간 동안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아니하는 방법 등으로 자신의 품행이 단정함을 입증함으로써 다시 귀화 허가 신청을 할 수 있”다며 귀화 허가를 받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한다. 이는 한국에서 중국 정부의 티베트 억압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 온 것이나,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에 반대해 명동성당 농성을 벌였던 경력을 괘씸하게 여겨 민수 씨의 귀화를 불허한 것 아닌지 더욱 의심케 한다.
법원은 강제 철거에 맞선 민수 씨의 정의로운 행동에 대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재산권 행사를 방해”했다며 “대한민국의 법적 안정성과 질서 유지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으로서 그 비난의 정도가 크다”고 주장했다. 억울하게 쫓겨나는 세입자의 생계보다 ‘재산권 행사’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세월호 참사의 배경이었던 ‘사람보다 이윤’이라는 논리다. 또한 이윤 추구에 희생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을 억누르는 것이 ‘법적 안정성과 질서 유지’의 본뜻이라는 사실도 보여 준다.
무엇보다 국적법 자체가 이주민들에게는 매우 차별적이고 넘기 힘든 장벽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미래부 장관 후보 김종훈에게는 불과 나흘 만에 잃었던 국적을 회복시켜 줄 만큼 관대하지만, 민수 씨와 같은 보통의 이주자는 15년 넘게 한국에 살며 가정을 꾸렸어도 매우 까다롭게 귀화 요건을 적용한다. 최근 정부는 영주권 전치주의를 도입하는 개악도 추진 중이다. 이 제도는 영주권을 얻지 못하면 귀화를 신청조차 할 수 없고, 특히 난민과 이주노동자는 영주권 신청 대상에서 제외돼 아예 귀화 신청 자체를 가로막는다. 반면 5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한국인을 5명 이상 고용한 외국인에게는 체류 기간에 관계없이 즉시 영주 자격을 부여한다.
이처럼 이번 판결은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갈수록 강화되는 인종차별적 출입국 규제와 집회와 시위,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보수적인 판결 및 정책들과 일맥상통한다. 겉으로는 다문화를 외치면서 ‘불법 체류’, ‘외국인 범죄’,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 운운하며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고 억압을 강화해 온 것이 정부의 이주민 정책의 실체다. 그래서 민수 씨는 자신의 귀화 불허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주민 전체의 문제라고 말한다. 항소할 뜻을 밝힌 그에게 지속적인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