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맞춰 북한 최고위급 인사 3명(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 인천에 왔다. 북한 정권에서 서열이 2~4위쯤 되는 인물들이 한꺼번에 남한에 오면서, 남·북한 정부는 곧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하기로 합의했다. 남북 간에 오랜만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가 잠시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남북 간 긴장을 일으키는 일들이 일어났다. 10월 7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 함정 간에 ‘사격전’이 벌어졌다. 이때 남한 해군 함정은 북한 경비정을 향해 조준·격파 사격을 시도했다. 10월 10일에도 경기도 연천에서 남북 양측이 상호 사격을 벌였다. 남한 우익 단체가 북한 쪽으로 ‘삐라’ 풍선을 날렸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남북 관계가 온탕과 냉탕을 급격히 오가는 것일까? 최근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간 긴장이 쌓이면서 한반도에서도 모순이 커져 왔다. 이런 모순된 상황이 남한 정부의 대북 정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남북 관계가 경색돼 왔다. 그 와중에 북한의 핵무기 능력이 강화되고,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커지고, 북일 대화도 시작됐다.
남한의 일부 우익 인사들은 이것을 남북 관계 악화로 생긴 ‘부작용’으로 보고 우려한다. 최근 〈중앙일보〉가 그런 걱정을 적극 대변하고 있다.
“[5·24조치 이후] 우리는 북한 문제에서 주변으로 밀려났고, 중국은 북한에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 5·24조치는 대북 제재가 아니라 자해(自害)가 돼 버렸다.”(〈중앙일보〉 10월 14일자 사설)
이런 상황 때문에 우익 내에서도 대북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반대 방향의 압력도 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은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위한 중간 보고서와 제안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중국을 겨냥한 공세적 계획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와 맞물려, 한국이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한반도 배치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국방장관 한민구는 ‘사드 배치가 안보와 국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런 조처의 빌미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북 간 대화가 안정적으로 진행되기는 힘든 것이다.
남북 지배자들 간에 쌓인 상호 적대감과 불신도 상당하다. 10월 7일 남한 해군 함정이 서해에서 북한 경비정을 향해 격파 사격을 할 때 청와대는 “군이 알아서 대응하라”며 위험한 상황을 방치했다.
지금은 ‘삐라’ 살포 문제 등으로 남·북한 정부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사드 배치나 한미일 삼각 동맹 구축을 위한 조처들이 진전됨에 따라 남북 간에 새로운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은 여전히 많다.
그래서 남북 대화에서 5·24조치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밝힌 박근혜도 “남북관계는 늘 이중적”이라면서 단기간에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으리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 좌파가 남북 대화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외교적 해법을 촉구할 게 아니다. 더 넓게 보아 제국주의 간 각축전에 반대하고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에 더 헌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