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기업주들의 이윤몰이보다 하찮게 여기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에서 비롯했다. 노동계급과 민중의 안전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하고 무시하는 체제의 수혜자들이 만들어 낸 미필적 고의의 살인인 것이다.
선주와 고위관료들의 눈에는 볼품없는 노동계급 자녀들의 사고에 돈과 인력을 투자하는 것이 낭비로 보였을 것이다. 골든타임에 구조의 능력도 의지도 발휘하지 않았던 이유다. 어쩌면 골든타임을 놓친 뒤에는 불가항력의 사고로 위장해 참사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떠넘기려고 구조를 회피하고 방해했을런지도 모른다.
정부와 국회는 비용 절감과 이윤 확보를 위해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추진해 기업들을 도왔다. 박근혜 정부에게는 사회의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제기가 손톱 밑 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진도 앞바다에 생지옥이 펼쳐졌지만, 지옥문은 육지에서 열려 바다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어이없는 대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당연한 진상 규명 요구가 지배자들의 그토록 야비한 반감과 방해에 부딪힌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는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 문제다. 이는 노동계급에게는 정의와 민주주의의 문제다. 노동계급 자녀들이 대거 희생됐다. 세월호 참사를 부른 민영화, 규제 완화, 노동자 혹사와 천대 등은 부패한 지배자들이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행위다. 비용 절감을 위한 위험한 작업공정, 이윤 경쟁을 위한 실적 압박, 비용 절감을 위한 저임금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밤샘 노동, 심지어 지하시설 환풍구가 깔린 도보를 지나는 출퇴근 길 등 노동자 삶의 현장이 ‘세월호’다.
세월호 참사가 노동계급의 조직된 투쟁과 연결돼야 하는 이유다. 체제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투쟁은 체제의 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